[최영미의 어떤 시] [100] 조그만 사랑 노래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12. 19. 00:00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황동규(1938~)
‘어제를 동여맨 편지’라니 참 멋진 표현이다. 길이 사라지면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기 마련이나, 뒤가 반복되며 서로를 부정하는 행이 시적 긴장감을 높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다. 공기놀이를 하도 해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는데, 내가 갖고 놀던 돌은 다 어디로 갔을까.
7행까지 언어의 밀도가 높다가 8행에 ‘사랑한다’는 상투어를 두번 반복했다. 꽉 조였다 풀어주는 기술. ‘사랑한다’보다 강력한 언어는 없다. 어떤 비유도 ‘사랑’을 넘어서지 못한다. 사라지고 깨지고 떠다니는 이미지들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서정시. 황동규 선생이 마흔 살에 발표한 시라는데, 젊으니까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이고 추위도 환할 수 있다. 젊으니까 실연의 아픔도 아름다운 시가 되고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snow)이 눈(eye)을 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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