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이태원 참사,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강구열 2022. 12. 18. 2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日 언론 ‘이태원 참사’ 언급하며
불꽃축제 사고 가능성 등 분석
정작 우리는 책임 회피·정쟁만
비극 기억·대책 고민 치열해져야

지난 15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 사회면 톱기사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참사 발생 후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 일본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검하는 내용이었다. 올해 일본에서 열린 복수의 행사를 정한 뒤 통신사 KDDI에 의뢰해 행사 당시 사람들의 흐름과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행사 관계자를 직접 취재한 뒤 기사를 작성했다.

8월 11일 교토 가메오카(?岡)시에서 열린 불꽃축제를 분석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관객은 예년과 비슷한 12만명이었지만 시간대에 따라 밀집도 달라지며 위험성이 커졌다. 이날 오후 11시 행사장 주변 약 1.5㎢ 내 인파는 예년보다 54% 정도가 증가한 약 4200명이 모여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동이 제한됐고, 축제를 보고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해당 기사는 밀집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참가자 전체의 규모보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 장소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이태원 참사 한 달 반’이라는 기사 제목에 일단은 눈길이 간 것이었지만 타국에서 일어난 참담한 사건을 교훈 삼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자국민 두 명이 희생됐고,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이 정도의 관심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해 다른 기사들을 찾아봤다.

2001년 7월 21일 아카시(明石)시 불꽃축제 사고 관련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불꽃축제 참가자들과 인근 기차역에서 내린 승객들이 행사장 인근 육교에서 엉키면서 발생한 사고로 11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월 21일, 아카시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신입직원 50명을 상대로 연수를 실시했다고 한다. 앞서 19일에는 희생자 유족들의 수기, 사고 기록을 모은 책 ‘아카시 육교사고 재발 방지를 바라며’가 출판됐다. 유족들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사고를 알았으면 싶었다”, “(사고 관련) 기록이나 사진을 실어 재발 방지로 이어졌으면 했다”며 책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아카시시 사고는 21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 아픔을 곱씹고 있었다.

요미우리신문 기사와 아카시시 사고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다른 나라의 일, 오래된 옛날의 불행에 대한 것이란 점에서 지금 당장 철저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우리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형사고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 갈지를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하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이유다.

비할 바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유족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위로는커녕 상처를 헤집어 놓는 언사,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 어머니를 향해 “자식 팔아 한몫 챙기겠다는 수작” 운운한 김미나 창원시 의회 의원의 글에는 기겁할밖에 도리가 없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에 대한 요구에 정부, 정치권은 제대로 호응하고, 적절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냐, ‘이태원 사고’냐란 공식 명칭 논란이 일 때부터 정부가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10대 생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두고 “본인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 생각이 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한덕수 총리의 발언은 이런 의심을 더욱 짙게 한다. 유족들이 협의회를 구성한 것을 두고 정권 실세인 권성동 의원이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 정쟁화하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의 골 깊은 진영대결의 소재로 변질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참사의 비극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고, 앞으로 어떻게 기억해 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치열해져야 할 때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