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설 진화? 전시 지도자 홍보? 푸틴 군수뇌부 회의 이유는

허경주 2022. 12. 1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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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군사령부회의 이례적 공개한 푸틴
거리 두던 전쟁 직접 챙기며 의혹 커져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화상 자문회의를 주재하던 중 생각에 잠겨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하는 군사령부를 직접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일주일 넘게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던 상황에서 돌연 본인의 행적은 물론, 전쟁 상황을 직접 챙기는 모습까지 공개한 것이다. 전쟁 작전 방향에 대한 군사령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통해 ‘남미 망명설’이나 ‘건강 이상설’을 진화하며 전시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전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세르게이 수로비킨 총사령관 등 10여 명의 사령관을 소집해 군사령부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고 밝혔다.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온종일 군지휘부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방송이 방영한 개회사에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단기와 중기 작전에 대한 의견을 들으러 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행보는 그간 전시 상황에서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어지는 러시아의 졸전과 자신을 결부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전황과 거리를 둬 왔다. 남부 요충지 헤르손에서의 퇴각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고, 점령지나 최전선을 공개 방문한 적도 없었다. 러시아 국내에서 거센 비판을 받는 쇼이구 장관이나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함께한 자리를 공개한 적도 거의 없다.

때문에 러시아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번 군사령부 방문이 ‘전쟁 접근 방식’에 변화를 예고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 유리 표도로프는 “군사령부 방문을 공개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군을 지휘하고 있고 전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려는 크렘린궁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서방에서는 이번 영상이 푸틴 대통령 부재 상황을 위해 미리 찍어둔 동영상일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다만 이번 행보가 그간 푸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잇따른 망명설이나 건강 이상설을 해명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날 방문 이전까지 푸틴 대통령은 연례 행사를 줄줄이 취소하며 일주일 넘게 두문불출했다. 2012년 이후 한 차례도 빼놓지 않았던 연말 기자회견을 취소하거나 ‘건강한 대통령’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매년 말이면 출전했던 아이스하키 행사도 건너뛰었다. 때문에 최근 그의 건강 이상설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대패할 것에 대비해 푸틴 대통령이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최고경영자(CEO)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만큼, 푸틴 대통령 피신을 돕는다는 관측이다.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수로비킨(왼쪽) 최고 군사령관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크렘린궁 제공

푸틴 대통령 연설비서관 출신 정치평론가 아바스 갈리야모프는 크렘린궁 내부 소식통을 인용, “푸틴의 탈출계획 작전명이 ‘노아의 방주’라는 구체적 정황도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망명설을 진화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공개했다는 관측이다.

이에 반해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크렘린궁이 푸틴 대통령을 ‘유능한 전시 지도자’로 홍보하려 이번 군수뇌부 회의 장면을 공개했다고 분석했다. ISW는 이날 보고서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연출하려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이번 회의 공개를 통해 러시아 국방부가 조직적이고 통일된 모습으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부처라는 점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군 지도부가 지장 없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홍보가 필요해진 배경은 자국 내 전쟁 강경파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ISW는 분석했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의 수장 등 강경파들이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패전을 거듭한 자국군을 고강도로 비판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ISW는 “러시아의 극단적 국가주의자, 강경 전쟁 찬성론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비판을 방어하려 하겠지만, 이런 노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또한 (이런 홍보 노력으로) 극단적 국가주의 성향의 전쟁 강경파와 국방부 사이의 갈등은 계속 생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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