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둘러앉아 두런두런 ‘삶 배우는 공동체’ 차려봤어요”
[짬]시인이자 교육자 오인태 작가
“요즘 유행하는 혼밥, 혼술의 원조가 바로 접니다. 1998년에 이미 시집 <혼자 먹는 밥>을 펴냈거든요. 따지고 보면, ‘시인의 밥상’도 제가 먼저였어요. 등단이나 연배로는 박남준 시인이 한참 선배이지만, 지리산 산골 생활도 그렇고 <시가 있는 밥상>(2014)을 펴낸 것도 앞섰으니까요.”
문단 안팎에 전형적인 ‘경남’(경상도 남자)으로 꼽히는 그는 특유의 억양과 ‘농담 섞인 너스레’로 편안하게 말문을 텄다. 지난 17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 이야기 마당을 펼친 시인이자 교육자 오인태(60)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개다리소반에 직접 차린 52가지 밥상 사진을 곁들여 에세이집 <밥상머리 인문학>(궁편책)을 펴낸 그는 이날 ‘밥상, 사람의 품격’을 주제로 2시간 가까이 강연과 서명회를 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모교인 진주교육대에서 성황리에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진주교대 나와 초등교사로 시작해
1989년 ‘전교조 탄압’ 해직됐다 복직
청학동 산골 묵계초교 교장 재직중
직접 차린 52가지 밥상 에세이집
‘밥상머리 인문학’ 펴내고 서울 토크쇼
“혼밥시대 함께하는 밥상 그리워”
“흔히들 오해하는데 저는 요리사가 전혀 아니고, 요리를 특별히 잘 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지요. 책에도 간단하게 음식 만든 과정을 소개하긴 했지만 특별한 레시피는 아니고요. 그저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따스했던 제철 음식들을 떠올려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유독 ‘밥’과 ‘밥상’을 주제로 책을 여럿 낸 연유는 무엇일까. 책 제목에 ‘인문학’을 내세운 이유는 또 뭘까. 우선 그의 이력을 살펴봤다.
1962년 경남 함양에서 난 그는 진주교대를 나와 초등교사로 재직하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 거창 아림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내던 1991년 동인지 <녹두집>(3집)을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나왔다. 1994년 거창 웅양초교에 복직된 뒤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등을 거쳐 지금은 하동 묵계초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교단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시와 동시, 문학평론, 시사 글 등 다방면의 글쓰기 활동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들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부산·경남 젊은시인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밥상에 차려내는 음식으로, 아버지는 그 밥상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자식들을 가르치셨다. 아버지는 한번도 밥상 앞에서 반찬투정을 하거나 어머니를 핀잔하지 않으셨고, 훈계조로 자식들을 나무라거나 우격다짐으로 강요하지 않았으며, 식구 누구도 꼭 찍어 타박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셨다.’
그는 이날 ‘책을 펴기 전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북토크를 시작했다.
“전교조 해직 사태 때 ‘탈퇴서’ 한 장만 내라고, 당사자인 저보다 아버지에게 ‘사촌에 팔촌까지’ 동원해 압력이 거셌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한테 끝까지 한마디 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도 제가 30대 때 여의는 바람에 밥상 한번 차려 올리지는 못했죠. 하지만 묵묵히 보여준 ‘밥상머리 교육’이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에세이집의 제목에 담긴 진짜 뜻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이었고, 그래서 요리책이 아니라 부러 ‘인문학’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혼자 손수 밥상을 차린 것일까?
“전근이 잦은 교사다보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때가 많아 혼밥을 자주 하는 편이었죠. 직접적인 계기는 에스앤에스(SNS)에 정치적인 의견이 담긴 글을 가끔 올려 ‘논객’으로까지 불리다보니 어느날 문득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글 대신 ‘밥상’을 차려 짧은 시를 올렸죠.”
2012~13년 한 매체에 100회 연재도 한 그의 시와 밥상을 보고 여러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여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번 두번째 ‘밥상’ 책도 그때 이미 기획해 무려 8년이나 숙성한 것이란다.
“지금 근무 중인 묵계초등학교는 지리산 청학동에 가까운 깊은 산골입니다. 그런데 출판사 김주원 대표와 이다겸 편집자가 서울에서 8시간이나 걸리는 불원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여러차례 달려와 줬어요. 마침 2019년 코로나19로 고립 아닌 고립 생활을 하면서, 새로 글을 써서 묶어내게 됐죠.”
책에 등장하는 음식은 단 한가지도 소개하지 못한 채 그의 이야기는 예정된 시간에 쫓겨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가 혼자서라도 꼬박꼬박 밥상을 차려 먹는 이유였다.
“혼자 밥상을 차리다보면 들에서 일하다 돌아와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생각나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사랑을, 인생을 배웠죠. 함께 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옛날처럼, 밥상을 매개로 공동체 의식도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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