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렵한 스포츠카 닮았지만, 알맹이는 탄탄한 세단입니다
고성능 브랜드 ‘R’ 디자인 따와…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내·외관
디젤 엔진 가속·연비 장점은 챙기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80% 줄여
폭스바겐의 ‘아테온 2.0 TDI R-라인 4모션’을 지난 6일 시승했다. 지금은 디젤 차량을 타기에 적합한 시기는 아니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뛰어넘는 유례없는 가격역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각종 하이브리드차를 연이어 내놓는 탓에 ‘싸고 연비 좋은’ 디젤 엔진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디젤은 정말 끝물일까. 다양한 궁금증을 품은 채 아테온을 몰고 서울 시내에서 경기 파주까지 약 110㎞를 주행해봤다.
아테온 2.0 TDI R-라인 4모션은 2017년 처음 출시된 폭스바겐의 준대형 세단 아테온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국내에는 지난 7월 출시됐다. 자동차의 풀네임이 길고 복잡해 보인다. 2.0ℓ급 직분사 디젤 엔진이 실렸으며, 일반 아테온과 알맹이는 똑같지만 폭스바겐의 고성능 브랜드 ‘R’의 디자인(R-라인)을 따와 차체 내·외관을 스포티하게 꾸몄다. 여기에 4륜구동(4모션)이 적용됐다.
아테온의 외관은 전체적으로 날렵했다. 가장 첫눈에 들어오는 전면부 그릴의 크롬 라인은 주간주행등까지 길게 뻗어 있어 세련된 인상을 줬다. 클래식 스포츠카에서 영감을 받은 패스트백 디자인을 차용했다고 하는데, 지붕에서 트렁크까지 완만하게 떨어지는 곡선이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형상을 이뤘다. R-라인 디자인에서 채택한 디테일도 돋보였다. 라디에이터 그릴 위, 차량의 측면 등에 R-라인 로고가 붙었고 후면의 리어 스포일러가 트렁크 모서리를 강조했다. R-라인 전용의 20인치 휠을 사용했다.
외관처럼 주행도 경쾌했다. 아테온은 이른바 ‘실용 영역’으로 불리는 1750~3500rpm(분당회전수)에서 최대토크 40.8㎏·m가 발휘된다. 낮은 rpm에서 뿜어져 나오는 최대토크는 디젤엔진의 대표적 장점으로 꼽힌다. 정차 시 출발이나 오르막길 주행 등 힘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전혀 부족함 없는 성능을 자랑했다. 아테온의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7.9초이며 최고 속도는 237㎞인데, 솔직히 날렵한 외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향인 독일에는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51.0㎏·m짜리 2.0 TDI 바이터보 모델도 있지만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건 아쉽다. 게다가 가솔린 4기통 직분사 터보엔진의 아테온 R라인은 최고출력 320마력으로 제로백 4.9초를 자랑한다.
아테온의 주행감은 탄탄했고, 승차감은 고급스러웠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지나도 충격을 깔끔하게 잡아냈다. 댐퍼가 장착된 독립형 리어서스펜션(멀티링크)이 쓰였고, 양쪽 액슬(차축 바퀴와 연결돼 차대를 지지하는 장치)에는 롤링(좌우 흔들림)을 잡아주는 ‘안티롤바’가 장착돼 있다. 특히 이 정도 가격대에서 보기 힘든 ‘어댑티브 섀시 컨트롤(DCC)’도 장점이다. 서스펜션 댐퍼의 압축률 같은 세부 설정을 1~15단계까지 직접 조절할 수 있다. 운전자의 선호도에 따라 차량 하체의 감각을 스포츠카의 ‘탄탄’에서 프리미엄 세단의 ‘안락’까지 폭넓게 선택할 수 있다.
시트의 착좌감도 편안했다. 아테온에는 R-라인 전용 나파가죽 시트가 실렸다. 얼핏 PC방 의자처럼 생기기도 한 이 시트의 좌우 날개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안락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커브 구간에서도 올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잔진동은 느껴졌다. 정차 상태에서의 흔들림과 약한 소음은 “아, 이 차 디젤이었지”를 되새겨줬다. 불쾌할 정도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 고속 영역으로 진입하면 엔진 소음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으며, 외부 소음도 상당 부분 차단된다.
실내 공간도 넉넉했다. 아테온의 전장은 4865㎜, 휠베이스는 2840㎜다. 전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휠베이스 덕에 동급 모델 대비 거주성이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트렁크 적재량은 575ℓ로 동급 세단들과 비교했을 때 적당한 사이즈다. 2열 시트를 접으면 트렁크 용량은 1557ℓ까지 늘어난다. 뒷유리와 트렁크가 한꺼번에 열리는 패스트백 구조라 짐칸 입구가 일반 세단보다 넓다. 부피가 큰 짐도 무리 없이 실을 수 있어 보였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놓고 본다면, 디젤은 가솔린에 비해서는 강점이 있다. 디젤 엔진은 같은 거리를 주행했을 때 가솔린 엔진보다 탄소를 10~20% 적게 배출하는 편이다. 반면 미세먼지를 만드는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디젤이 압도적으로 많이 뿜는다. 이를 잡아내는 게 디젤 엔진 개발의 핵심이라고 할 만큼 중요해진 이유다. 신형 아테온에는 배기가스 저감을 위해 SCR 촉매변환기를 추가해 2개를 장착한 ‘EA288 evo 2.0 TDI’ 엔진을 탑재했다.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이후 몇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엔진으로,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질소산화물을 약 80%까지 저감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연비는 디젤 차량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총 2시간52분 동안 고속도로 8, 시내 2의 비율로 115㎞를 달렸는데 평균 연비는 ℓ당 17.4㎞를 기록했다. 아테온 사륜구동 모델의 제원상 복합연비는 ℓ당 13.8㎞이며 일반 전륜구동 아테온은 15.5㎞까지 올라간다. 고속도로 정속주행 시는 연비가 20㎞를 훌쩍 넘는다.
아테온과 동급인 국내 준대형 가솔린 세단들의 복합 연비가 ℓ당 9~11㎞인 것을 고려하면, 그리고 디젤의 가격역전 현상이 어느 정도 진정돼 다시 ‘서민 연료’ 지위를 되찾게 된다면, 아테온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아테온 정도라면 전기차, 수소차 시대로의 전환에 본격 편승하기 전 농익은 내연자동차 기술을 만끽해볼 수 있는 현실적 선택지로 여겨졌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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