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총선 투표율 10%도 못 채워…야권 “대통령 퇴진을”
3월엔 의회 해산도…현대 정치사상 최저 투표율 유력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튀니지 총선에서 현대 정치사상 가장 낮은 10% 이하의 투표율이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각한 경제난과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발 등이 전례 없는 ‘선거 외면’을 야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튀니지 선거관리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 투표율이 8.8%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최종 집계된 투표율은 이보다 높을 수 있으나 크게 오르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10%도 안 되는 투표율이 유력한 상황이다.
튀니지의 이번 투표율은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전례 없이 낮은 수치다. 영국 서식스대 개발학연구소의 막스 갈리엔 연구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튀니지는 이전 (다른 국가들이 세운) 최저 투표율 기록의 절반에 불과한 투표율을 보이며 현대 세계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스웨덴 소재 ‘국제민주주의 및 선거지원연구소’(IDEA)에 따르면 그간 기록된 가장 낮은 투표율은 2015년 아이티 총선의 17.8%였다.
기록적으로 저조한 투표율은 최근 이어진 튀니지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튀니지는 앞서 2011년 ‘아랍의 봄’ 봉기의 발원지로 아랍권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 속에 시민들의 불만이 쌓여왔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2019년 10월 집권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의회정치를 배격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이른바 ‘명령 통치’를 시작하며 의회를 일시 정지시키고 정부 내각을 파면했으며 지난 3월에는 아예 의회 전체를 해산시켰다. 지난 7월에는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까지 성사시켰다. 그의 이런 행보에 튀니지를 과거 독재 정권 시절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고조됐다.
사이에드 정권은 또 정당이 후보에게 자금 등을 지원해 선거에 관여하는 것을 사실상 막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 결과 총선 후보들은 주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사업가나 지역 유명 인사, 부족 원로들로 채워지게 됐다.
이에 대부분의 야당은 의회 해산과 개헌에 이은 사이에드 대통령의 권력 강화를 위한 또 다른 방편일 뿐이라며 이번 선거를 보이콧했다. 시민들은 투표를 외면했다. 대다수 유권자는 후보들의 면모나 정치적 능력을 잘 알지 못하게 됐고, 자금력이 있는 후보가 홀로 등록한 선거구에선 선택의 폭이 사실상 제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에 생계유지에 급급한 시민들의 사정은 투표에 관한 관심을 떨어뜨렸다.
야권 연합인 ‘전국 구원 전선’의 지도자 나지브 체브는 이번 선거를 “대실패”로 규정하고 조기 대선을 요구했다. 최악을 기록한 투표율은 대통령의 정통성 상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사이에드를 불법적인 대통령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짧은 과도 기간을 거쳐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국민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조한 투표율이 사이에드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출마 후보 중에는 사이에드 정권을 지지하는 성향의 인물들이 많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표가 나오지 않으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민들은 사이에드 정권뿐 아니라 야당을 포함한 현 튀니지 정치권 전반을 불신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주요 선거에서 투표율이 하락하는 현상은 최근 튀니지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 유권자의 무관심과 부패한 기성 정치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환멸, 권위주의적 정부의 유권자 억압 등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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