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공들인 ‘전라도 천년사’에 식민사관 표현 논란
‘일본서기’에 적힌 ‘기문국’·‘침미다례’ 등 지명 인용
“속국 인정” 비판에 “논쟁 시작도 학술적 의미” 해명
전북·전남·광주 등 호남권 3개 광역지자체가 손잡고 24억원을 들여 5년 동안 추진한 <전라도 천년사>가 ‘식민사관’ 조장 시비에 직면했다.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이용돼 온 <일본서기>에 기술된 내용들이 수십회 본문에 적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판 봉정식은 21일 열릴 예정이다.
가칭 ‘전라도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는 18일 <전라도 천년사>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결과 전북 남원을 ‘기문국’이라고 다수 표현했으며, 이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라도민연대 측은 “국내 어느 역사서에도 남원이 ‘기문국’이라는 기록이 없다. 전라도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집필된 책에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지명을 쓰는 것은 전라도가 일본의 지배 속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문국은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전인 4세기 후반에 야마토 정권이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복한 뒤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200여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사기>의 임나일본부설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경향신문이 정보공개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전체적으로 선사고대 단락 77쪽부터 251쪽까지 수십차례 기문국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전라도민연대는 <전라도 천년사>는 남원 이외에도 전북 장수군을 <일본서기>에 나온 ‘반파국’으로 인용했고, 전남 해남군은 ‘침미다례’로 썼다고 밝혔다. 일본 극우파와 일부 한국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4현’까지 게재돼 있다고 전했다.
양경님 전라도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초대형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아닌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등장시키는 것은 전라도가 일본 속국이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니 통탄할 일”이라면서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최종본이 공개되면 얼마나 더 많은 역사왜곡, 역사날조 기록이 발견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반면 이영일 전북도 학예관은 “6명의 집필 교수 가운데 5명은 기문가야라는 표현은 추정될 수 있다는 논지의 의견을 가졌고, 한 교수는 기문가야를 주장해 실리게 됐다. 기문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이지만 남원과 장수 사이에 기문이라는 지명이 분명히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국내 역사서에는 왜 그런 내용이 없느냐는 질문에 “<삼국사기> 기록을 적은 김부식이라는 분이 취사선택하며 다 태워서 기록이 없다. 기문국은 위치나 장소의 명명일 뿐이기 때문에 식민사관을 조장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오히려 <전라도 천년사>가 공개된 이후 이 쟁점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데 학술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 정명 천년(2018년)을 기념하기 위해 고려 현종 9년(1018년)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할 목적으로 애초 기획됐다가 현종 이전의 역사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전라도 오천년 역사를 편찬키로 확대된 사업이다.
전문인력 213명이 초고를 기술했고 연구원 200명이 자료를 조사했다. 총투입인원이 600여명에 달해 편찬사에 참여한 인원 규모는 전국 최대였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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