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00시간 현장실습 시키면서…정부선 ‘노동교육’을 삭제하나요”
과로·혹사 특성화고 학생 등
교육·노동계, 정부청사 시위
오전 11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5시에 퇴근. 특성화고 졸업생 박동균씨(23)가 졸업을 앞둔 2018년 겨울 실습생 신분으로 일한 정보기술(IT)기업에서 경험한 노동시간이었다. 툭하면 주말에 출근해 한 주에 100시간 넘게 일한 때도 허다했다. 퇴근 후 자취방에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지만 월 급여는 80만원 수준이었다.
박씨는 학교 취업 담당 선생님을 찾아 상담했지만 “참고 버텨라”라는 말만 들었다. 박씨는 사회생활이 다 그런 줄 알고 참았다. 졸업한 지금에야 당시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씨는 “제대로 된 노동교육을 받았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며 “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배들은 그런 일을 안 겪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부는 노동을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노동’을 삭제하기로 하면서 노동·교육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는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집회를 열어 “노동교육은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더 중요성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며 “국민 합의로 만들어진 총론 주요사항과 의견수렴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교육과정을 바꾼 정부를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8월 교육과정에서 노동 관련 교육을 삭제한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발표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 14일 새 교육과정을 확정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특성화고 3학년 정예진씨(19)는 “정부가 진짜 노동자의 관점에서 쓰인 내용은 빼고 기업의 입장만 담았다”며 “진작 배웠어야 할 일과 노동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했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조 위원장은 “취업현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가만히 있거나 참으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자기 잘못이라 생각하거나 얘기하기 어렵거나, 말해줘도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자격이 있나”라고 지적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노동혐오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교육과정 개악 즉각 중단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정부서울청사를 한 바퀴 돌며 행진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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