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압박해 송기복씨 일가 간첩단 만들고 ‘동백림 사건’ 재판까지 개입[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1978년 민간인을 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검찰로부터 불법 체포된 연규찬씨(77)는 복권을 위해 40년에 걸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검찰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진정을 제기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사법부가 판단을 내린 사건은 재조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연씨는 “국가기관이 누명을 씌우고 범죄자로 만들어놓고선 사법부 판단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면 억울함은 어떻게 푸느냐”고 말했다.
연씨는 자신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피해자가 국가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가족을 통해 검찰과 사법부를 압박했다고 의심한다. 당시 파출소에 함께 있었던 목격자 권모씨도 “노인이 권력기관을 운운하며 행패를 부리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연씨의 의심이 사실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군사정권은 정보기관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법부 판결에 개입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2년 ‘송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이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송기복씨 등 일가가 점조직식 간첩단이라고 발표했다. 기소 이후 이들이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법원은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이라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러자 검찰과 안기부는 유죄 판결을 만들기 위해 사법부를 압박했다. 주심 대법관을 내사하거나,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통해 협조를 구하며 압력을 넣었다. 2007년 나온 국정원과거사위원회 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에 담긴 내용이다.
법원은 안기부가 새로 세운 기준대로 심리를 진행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송씨 사건은 재상고심에서 한 차례 더 파기환송된 뒤, 1984년 8월 2차 파기환송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재재상고심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은 2009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과거사위는 보고서에서 ‘동백림 사건’ 재판에도 정보기관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으로, 예술인과 공무원 등 194명이 대남적화 공작을 벌였다는 죄목으로 처벌받았다.
과거사위는 보고서에서 “내부 문서에서 중정이 재판 진행 중 검찰과 재판부에 금품을 제공하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중정이 자백 이외에 물증을 제시하기 어려워지자 금품을 통해 검찰과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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