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만 바라보는 집권당
지도부보다 윤핵관에 ‘힘’
국민의힘의 ‘용산(대통령실)바라기’ 행보가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실과 정부에 민심을 전달하는 여당 역할을 망각한 채 당 전체가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만 바라보는 상황이 더 심해지고 있다. 지도부보다 윤 대통령 뜻을 전하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발언에 더 힘이 실린다. 용산의 뜻이 국민의힘을 장악하면서 지도부가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사라지고 정당정치 실종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산안 국면 장기화에는 용산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법정처리시한(12월2일)이 16일이나 지난 18일 현재까지도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폭, 시행령으로 설치된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문제로 꽉 막혀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9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못 낮추면 23%나 24%는 안 되냐고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전부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15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24%로 1%포인트 낮추는 중재안을 제안한 뒤 입장이 달라졌다. 민주당은 중재안을 수용했지만, 주 원내대표는 “법인세 1%포인트 내리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거부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원안 고수 의견을 강조한 게 입장 번복 이유로 보인다.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예비비로 지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김 의장 중재안을 여당이 수용하지 않은 데도 윤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조직을 불법으로 낙인찍는다는 대통령실 반발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대응에서도 여당은 용산에 휘둘렸다. 참사 직후 국민의힘에서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퇴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경질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밝힌 후 당내 사퇴 요구는 사그라들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야당과 국정조사에 합의한 주 원내대표를 흔들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 시기와 규칙을 결정하는 데서도 윤심이 절대적이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초 내년 3월12일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윤 대통령이 사실상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내년 3월 초 전당대회 개최가 유력해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당원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 규정을 당원투표 100%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고, 친윤석열계 당권 주자들과 초·재선 의원들이 같은 입장을 설파하면서 이 방침이 굳어지고 있다.
친윤계 당권 주자들은 ‘윤심 마케팅’에 여념이 없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조차 지난 17일 “윤심을 파는 사람일수록 당원 지지를 받을 자신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지도부가 정부를 견인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관여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을 위해 국회의 권한을, 내다버렸다”고 비판했다.
정대연·문광호·탁지영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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