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거래소까지 불안…끝없는 악재, 가상통화 1년[끝 안 보이는 가상통화 빙하기]
프롤로그
가상통화 시장이 혹독한 ‘크립토윈터(crypto winter)’를 맞고 있다. 크립토윈터란 가상통화의 겨울을 뜻하는 단어로 가상자산의 가치가 폭락하고 거래량이 줄어든 상황을 말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글로벌 회계법인 마자르(Mazars)는 바이낸스, 크립토닷컴 등 가상통화 거래소들과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앞서 세계 최대 가상통화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인출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자르의 ‘감사’ 중단 소식에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은 또다시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올 들어 테라·루나의 폭락과 세계 3위 거래소 FTX의 파산 등 시장의 신뢰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전체 가상통화 시가총액은 지난해 고점 대비 3분의 2가 증발한 상태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8일 가상통화 전체 시가총액은 8000억달러(약 1040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3조달러(약 3900조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6만달러(약 7800만원)를 넘겼던 가상통화 대장주 비트코인도 1만6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가상통화는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파티에 힘입어 규모를 빠르게 키웠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것)을 잇달아 밟으면서 버블이 급격히 꺼졌다.
국내 가상통화 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국내 가상통화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이 1조56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2조8358억원) 대비 62.7% 감소했다.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33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541억원)보다 83.8% 줄었다.
내년 전망도 좋지 못하다. 한때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치켜세우던 투자은행은 비관적으로 변했다. 도이치방크가 지난 12일 공개한 시장 참여자(856명)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8%가 ‘비트코인이 내년에 50%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2배로 뛸 가능성보다 크다’고 답했다. 투자은행 스탠더드차타드(SC)도 최근 1만6000달러 선을 오가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해 “내년에는 5000달러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올해 가상통화 시장이 겪은 혹한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신뢰의 하락으로 보고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올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가상통화 산업에도 취약한 구멍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자율규제가 너무 느슨했다는 것이 문제를 촉발했다”고 말했다.
FTX 파산·위믹스 퇴출…대장 코인도 맥 못 춰 ‘해빙기 감감’
2022년은 가상통화 시장에 악재에 악재가 겹친 한 해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기조가 1년 내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액의 투자 피해가 속출한 테라·루나 사태, 세계적인 가상통화 거래소인 FTX 파산 등 가상통화 시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국내에서는 게임업체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WEMIX)가 4대 원화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일로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 1월21일 10.41% 하락…긴축공포
연초부터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예고됨에 따라 가상통화 시장에도 비관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금융정보 제공 사이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월21일(미 동부시간)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동안 10.41% 하락했다.
금융시장은 1월25~26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미 연준의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다. 미국의 2021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7.0%를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 인상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왔다. 1월21일은 긴축에 대한 공포로 뉴욕증시에서도 나스닥지수가 2.72% 하락하는 등 투자심리가 위축된 날이었다.
연준은 올해 3·5·6·7·9·11·12월 FOMC 정례회의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 중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것)도 네 번이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40년 만에 단행된 파격적인 금리 인상은 가상통화를 비롯한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급랭시켰다.
미 연준 긴축…투자심리 급랭
‘스테이블코인’ 테라 폭락에
시총 50조원 루나도 휴지조각
고물가·금리 인상 ‘악재’ 반복
■ 6월13일 15.63% 하락…테라·루나 사태
5월9일은 가상통화 시장 전체에 후폭풍을 불러온 테라·루나 사태의 서막이었다.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 테라USD(UST)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디페깅(depegging) 현상이 5월7일부터 이어졌는데 전과 달리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테라에서 디페깅이 일어나자 테라의 자매 코인 ‘루나’의 가치도 폭락하기 시작했다.
테라·루나의 발행사 테라폼랩스는 그동안 테라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테라를 1달러어치의 루나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테라의 가치를 유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행사는 시장에 풀린 테라의 물량을 줄이고 테라를 보유하던 투자자는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테라의 디페깅 상태가 이어지자 불안한 투자자들이 테라를 대량 매도하기 시작했고 루나도 폭락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0.99달러 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테라는 5월9일을 기점으로 더 하락했고, 불과 일주일 사이 0.17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스테이블코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같은 기간 자매 코인 루나도 99.99% 하락했다. 가상통화 시가총액 10위권 안에 들었던 루나의 폭락에 가상통화 시장의 투자심리는 급격하게 악화됐다. 이날 24시간 동안 비트코인은 11.64% 떨어졌다.
한때 시가총액이 50조원을 넘던 루나는 휴지조각이 됐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권 대표는 최근 세르비아에 체류 중인 것이 확인됐다.
테라·루나 사태의 여파는 테라폼랩스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6월13일에는 가상통화 대출 플랫폼 셀시우스(Celsius)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고객 자금 인출을 일시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셀시우스는 결국 한 달 뒤인 7월13일 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셀시우스 외에도 테라·루나 사태의 영향으로 대출·중개 업체 보이저 디지털(Voyager Digital), 가상통화 헤지펀드 스리애로캐피털(3AC) 등이 파산을 신청했다.
그 와중에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에 대한 공포는 시장을 계속 짓눌렀다. 6월11일 발표된 미국의 5월 CPI 상승률은 8.6%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가파른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는 가중됐다. 6월13일 24시간 동안 비트코인은 15.63% 하락했다. 올해 가장 큰 낙폭이었다.
하반기엔 거래소 신뢰도 문제
세계적 거래소 ‘FTX’ 파산에
비트코인 1만6000달러 붕괴
‘바이낸스’도 유동성 위기 겪어
■ 11월9일 14.25%하락…FTX파산
하반기에는 세계적인 가상통화 거래소 FTX가 파산을 신청했다. FTX의 유동성 위기는 11월2일 미국의 가상통화 전문매체 코인데스크(Coindesk)가 FTX 관계사인 알라메다 리서치의 재무 건전성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코인데스크는 “알라메다 리서치의 자산 대부분이 FTX의 자체 발행 가상통화 FTT로 이루어져 있는 취약한 구조”라고 밝혔다.
위기는 나흘 뒤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가 보유하고 있는 FTT를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히면서 고조됐다. FTX에서 자금을 빼려는 뱅크런이 일어나자 FTX는 고객 자금 인출을 중단했다. FTT 가격은 폭락했다.
이후 바이낸스가 FTX 인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11월9일 FTX 인수를 포기하면서 위기는 현실이 됐다. 이날 비트코인은 14% 넘게 떨어져 1만6000달러 선이 붕괴됐다. 11월11일 FTX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FTX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던 가상통화 대출업체 블록파이도 FTX발 유동성 위기에 지난 11월28일 파산을 신청했다. 또 다른 가상통화 대출업체 제네시스도 자금을 수혈받지 못하면 파산 신청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도 FTX 파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5개 원화 거래소 중 하나인 고팍스는 코인 예치 서비스 ‘고파이’의 자금을 제네시스를 통해 운용하고 있었는데, 제네시스가 유동성 위기로 돌연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고파이 상품의 원금·이자 지급도 지연됐다.
FTX에 투자했던 전통적인 기관투자가들도 타격을 입었다. 세계적인 투자 펀드인 블랙록, 소프트뱅크, 세쿼이아캐피털, 타이거글로벌은 FTX 투자로 인해 상당한 손실이 예상됐다.
■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도 흔들
지난 13일 바이낸스에서는 스테이블코인 USD코인(USDC) 인출이 급격히 늘면서 인출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미국 검찰이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를 자금세탁과 무면허 송금 혐의로 수사하고 있으며 기소를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용자들이 바이낸스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더해 글로벌 회계법인이 바이낸스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하면서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16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회계법인 마자르(Mazars)는 “가상통화 부문의 ‘준비금 증명(proof of reserve)’ 보고서 작성과 관련한 활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마자르는 거래를 중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준비금 증명’ 보고서가 대중에 이해되는 방식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FTX의 파산 이후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자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마자르 등 회계법인에 의뢰해 거래소가 고객 자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해왔다. 하지만 회계법인의 ‘준비금 증명’ 보고서에 대해 거래소들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지속됐고, 마자르는 끝내 바이낸스, 크립토닷컴과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그 여파로 16일 비트코인은 24시간 동안 4.2% 하락했다.
국내서는 ‘위믹스’ 상장 폐지
4대 거래소 “유통량 불신뢰”
2만8000원서 400원대로 추락
투자자 보호 등 정부 과제 산적
■ 위믹스, 상장폐지 법정 공방 중
지난달 24일 디지털자산공동협의체 닥사(DAXA) 소속 4개 원화 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은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의 거래지원을 종료(상장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위메이드가 업비트에 제출한 위믹스의 유통량 계획 정보와 실제 유통량이 상당한 차이를 보여 더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위메이드는 닥사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거래소들의 거래지원 종료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위믹스는 지난 8일 4개 원화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다. 4개 거래소에서 퇴출되면서 지난해 한때 2만8000원까지 올랐던 위믹스는 현재 400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위메이드는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지난 13일 항고했다.
루나·테라 사태, FTX 파산, 위믹스의 상장폐지 등 가상통화 시장에서 사건·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가상통화 시장의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가상통화를 육성할 것인지, 규제할 것인지 뚜렷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이 가상통화 시장은 규모를 빠르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닥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FTX와 위믹스 사태 모두 문제의 본질은 도덕적 해이와 정보 비대칭성이었다”며 “가상통화 업계에 비전이 있으려면 기술 발전 여부를 떠나 투자자 보호 등 기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정혁·박채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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