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학 학과 정원 자율화, 기초학문 위기 심화 우려한다
2024학년도부터 대학들이 입학정원 내에서 학과별 정원을 자율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교육부가 지난 16일 발표했다. 교원확보율 등 기존의 조건을 없애고, 학과나 학부를 쉽게 신설·통폐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겸임·초빙교원 한도 비율은 3분의 1까지 높이고, 학생 1인당 면적 기준은 줄인다고 한다. 대학 자율성 강화를 주장해온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취임 이후 내놓은 첫 규제 완화책이다. 대학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무게중심이 취업률 위주로 쏠릴 경우, 기초학문의 위기가 깊어지고 장기적 국가경쟁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앞으로 대학에서 인기학과 정원은 언제든 늘리고, 비인기학과는 언제든 축소할 수 있다. 지방대는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비인기학과의 남은 정원을 모아다 새 학과를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개혁은 앞으로 대학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2015년부터 실시돼온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도 2025년 폐지된다. 교육부 내 대학 업무를 총괄해온 고등교육정책실을 없애는 조직개편과 같은 맥락이다. 역대 정부는 입학정원 감축 시 재정지원으로 보상하거나, 하위대학은 지원을 끊어 사실상 퇴출을 유도하는 식으로 대학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셀프 서비스’라는 답안지를 내민 것이다.
하지만 인기학과로 편중될 게 뻔한 수요·공급 시장법칙이 난제를 풀 만능 열쇠가 되긴 어렵다.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고 지방대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사학 중심 대학교육 체제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은 정부가 큰 그림 없이 대학 정원 문제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만 18세 학령인구가 2020년 51만명에서 2040년 28만명으로 반토막 나는 저출생 여파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교육’과 함께 대학의 양대 기능인 ‘연구’를 잊어선 안 된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64개국 중 47위(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며, 세계 대학 종합순위 300위 내 한국 대학은 9개(QS 세계대학평가)에 불과하다. 영향력을 갖는 우수한 연구 및 논문 생산 실적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초학문 토양을 튼튼하게 가꾸기 위한 절대적 투자와 시간이 부족해 창의적 연구성과를 올리기 힘든 환경이 큰 이유로 꼽힌다.
기초학문 없이는 미래도 없다. 인문학 없는 ‘포용적 성장’, 순수과학 없는 ‘우주 강국’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존재 불가능하다. 정부는 필요한 대학 개혁을 추진하되, 사회 지속 가능성을 감안해 기초학문의 뿌리를 깊게 할 다양한 방도를 모색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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