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결과 안 나오자 방식 바꿔… 바로잡으려던 통계청장 `경질` [文정부 통계왜곡 파문]
당시 김현미 국토부장관 소환검토
치솟았던 집값 통계 의혹 제기도
"문재인 정권 5년동안 전 국민이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희생양이 돼야 했습니다. 정부를 믿은 국민만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문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부동산 관련 통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면 그것은 바로 '국정농단'입니다."(원희룡(사진) 국토교통부 장관)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통계 등이 조작됐다는 의혹과 관련, 현 정권의 본격적인 감사가 실시되고 국토부 장관의 날 선 발언이 이어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원희룡 장관은 "전 정권이 국민을 속였다"면서 '국정농단'이라는 단어까지 꺼내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감사원이 전 통계청장 2인을 직접 불러 조사했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소득주도 성장'의 설계자이자 문 전 대통령의 핵심 경제 참모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 조사까지 언급되고 있다. 현 정권과 전 정권 간 갈등의 전선이 통계 조작 의혹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감사원, 전 통계청장 2인 등 조사 마쳐… 홍장표·김현미 소환 검토하나= 전임 정부의 국가통계 왜곡 의혹 감사는 소득, 고용, 집값 등 주요 통계가 고의로 왜곡됐는지 여부와 이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핵심이다.
이른바 '통계 마사지'로 국민을 속이진 않았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통계 조작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18일 감사원 등에 따르면, 감사원은 문 정권에서 통계청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던 황수경 전 통계청장과 후임인 강신욱 전 통계청장을 조사했다. 2018년 가계동향조사 관련 논란과, 황 전 청장 경질 전후 과정을 들여다 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통계청장은 지난 2018년 8월 취임 13개월 만에 전격 경질됐다. 당시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와 달리 소득 분배가 더 나빠졌다는 통계청 자료가 발표된 뒤 강 청장으로 교체돼 논란이 있었다.
통계청은 분기마다 가구의 소득과 지출을 들여다보는 '가계동향조사'를 내놓는데,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2017년 4분기에 저소득층 소득이 전년도보다 10% 늘면서 빈부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당시 김동연 경제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 후 2018년부턴 해당 조사의 표본 수를 8000가구로 늘렸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8년 1분기 저소득층의 소득이 오히려 8% 감소한 걸로 나왔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최저임금을 2017년 대비 16.4% 올리는 등 소득증대 정책을 내놨음에도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책 방향과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게 된 청와대는 통계청에 표본틀을 바꿔 '무작위 추출' 대신 '소득 구간마다 균등한 비율'로 표본을 추출해 대표성을 높여보라고 사실상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표본틀을 바꾸는 등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황 청장이 경질됐고, 사회보장 정책 등을 연구한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었던 강신욱 씨가 다음 통계청장에 올랐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9년 2분기에는 다시 빈부격차가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강 전 통계청장은 가계동향 조사 방식을 개편, 소득 분배가 나아진 통계를 내놓았지만 개편 전후의 통계를 비교할 수 없게 돼 소득 분배가 나아졌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됐다. 또 임신, 질병 등으로 시간제 근무를 하는 근로자를 비정규직 통계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당시 황 전 청장은 이임식에서 '정확하고 신뢰성이 있는 통계를 만들어서 정책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통계는 객관성이 중요하다. 그것이 통계청이 견지해야 할 점이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압박성 인사 논란을 남겼다.
◇한국부동산원 집값통계 의혹도 제기… 통계청 노조는 반박= 통계 조작 의혹은 문 정부 시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집값 통계에서도 불거졌다.
최근 감사원은 한국부동산원, 통계청에 대한 현장감사를 실시해 전 정권의 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도 함께 조사했다.
당시 부동산 가격 동향 조사 과정에서 통계 조작 목적으로 표본을 의도적으로 치우치게 추출하거나, 조사원이 숫자를 임의로 입력하는 등 고의적 왜곡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통계작성에서 국토부가 개입한 정황은 없는지 등도 조사했다.
부동산 통계 왜곡 논란은 2020년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조사 자료를 근거로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의 집값이 11% 올랐다고 알고 있다"고 한 발언한 관련한 것이다.
당시 민간조사기관에선 집값이 50% 안팎으로 치솟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조차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52%에 달했다고 발표했고, 민간기관인 KB부동산 통계와도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 통계가 민간 통계와 5배 차이를 보이며 비판이 커지자, KB부동산 측은 주택통계 발표의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가 다시 제공하겠다며 번복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 부동산원은 2021년 7월부터 집값 조사 표본을 2배 이상 늘렸고, 이 후 한달만에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9.5% 올랐다고 발표하면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그 전까지의 통계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통계청 노조는 "표본 등 통계조사 방식의 개편은 이전 정부에서도 늘 있었던 일이며 조작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통계에 대한 불신은 국가정책에 혼선을 주는 것으로 이는 국익에 심대한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감사원이 먼지털이식 감사를 하다 안되니까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는 "정부 정책 수립과 추진에 있어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국가 통계는 정확성과 신뢰성이 생명"이라며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통계가 고의로 왜곡되기라도 했다면 중대한 문제로 철저히 의혹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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