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에도 긴축 택한 美·유럽…한은 고민 깊어져
ECB도 내년 최소 두 차례 빅스텝 예고, 금리 격차 좁힐 듯
주요국 매파적인 상황에서도 한은 긴축 여건 녹록지 않아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글로벌 경기 위축이 가속하고 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가 내년에도 여전히 높은 물가 흐름이 이어질 것을 예고하면서 통화긴축 흐름을 이어가겠단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행 역시 연간 물가상승률이 올해 5%대에서 내년 3%대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목표 수준(2%)을 웃도는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연간 성장률은 잠재 수준보다 낮은 1%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통화정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달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25%로 결정하면서 작년 8월 이후 총 2.75%포인트나 인상했지만 내년 한미 금리 격차는 더 벌어지고, ECB와의 금리 격차는 점차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25~4.5%로 올린 뒤 점도표를 통해 내년엔 최대 5.0~5.25%까지 추가 인상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한은 금통위원들의 최종금리 수준의 중간값이 지난달 금통위 당시 기준 3.5%인 점을 고려하면 한미 금리 역전폭은 1.75%포인트로 커질 수 있다. 이는 2000년 5월 기록한 한미 금리 역전폭인 1.5%포인트를 넘어 역대 최대 수준을 경신하는 것이다.
한미 금리 역전 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연준 인사들은 지금 수준의 높은 금리가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면서 시장 전반에 퍼진 금리 인하 기대감을 꺾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기준금리를 현재 예상보다 더 인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내년 최종금리가 1년 이상은 유지될 것”이라면서 매파적(통화긴축선호)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현재 2.5%로 한은 금리보다 0.75%포인트 낮은 ECB 금리와의 격차 역시 내년엔 점차 좁혀지면서 동등한 수준이 될 수 있다. ECB는 15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2.00%에서 2.50%로 인상해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렸지만, 내년 최소 두 차례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이 추가로 있을 것이라 예고했다. 이에 더해 내년 3월부터 월 평균 150억 유로 규모의 양적긴축(QT)도 병행할 계획이다. 한은이 내년 첫 금통위가 열리는 1월 1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한 3.5%로 결정한 뒤 인상을 멈춘다면 ECB의 최종 금리 수준과 같아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 유럽의 통화긴축 기조가 여전히 매파적인 가운데 한은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내년 초까지 5%대 물가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점과 한미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를 생각하면 금리 추가 인상을 이어가는 것이 맞지만 내년 경기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금통위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어서다. 이창용 총재가 지난달 금통위에서 밝힌 금통위원들의 최종금리 예상 수준은 3.25% 1명, 3.50% 3명, 3.75% 이상 2명이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한은 금리가 3.5% 이상으로 오르긴 힘들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준금리 움직임에 민감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16일 3.539%에 마감했는데, 기준금리와 통상 0.25%포인트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 금리 상단 전망치가 3.5%보다 낮을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주요 기관들의 내년 우리나라 연간 성장률 전망치도 1%대에서 점차 낮아지고 있어 한은의 예상 수준(1.7%)을 하회하는 가운데 경기에 대한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 14일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석 달 전보다 0.8%포인트나 낮춘 1.5%로 하향 조정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12월 FOMC 결과에서도 보여지듯 고금리와 저성장의 ‘불편한 동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윤화 (akfdl34@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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