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한겨레 2022. 12. 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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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지난 10월2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자유통일당 등이 개최한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가 열렸다. 연합뉴스(왼쪽 사진). 같은 날 저녁 촛불행동 주최로 서울 시청역 일대에서 열린 제11차 전국집중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팻말과 촛불조명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독일 정부가 정부 전복 음모를 꾸민 극우 집단 구성원 25명을 검거했다. 한명은 옛 독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이들은 그를 독일 지도자로 세우려 했다. 미국 공화당은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접수하게 됐다. 공화당은 아직도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페루에서는 친위 쿠데타를 시도한 대통령이 투옥됐다. 그 지지자들의 시위로 나라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일들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들 중 단지 세개의 사례일 뿐이다. 프리덤하우스가 2월에 펴낸 ‘세계의 자유 보고서’는 ‘독재정치의 세계적 확산’이라는 불길한 제목을 달았다. 보고서는 지난 25년간 민주주의가 최근처럼 나쁜 상황에 놓인 적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세계적으로 자유가 16년 연속으로 축소된 것의 결과다. 지난해 25개국에서 자유가 신장된 반면 퇴보한 곳은 60개국이다.

한국은 활기찬 시민사회를 지닌 민주국가다. 2022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서 지난해처럼 100점 만점에 83점을 받았다. 이런 평가를 따르자면, 지난 5년간 점수가 별로 바뀌지 않았으므로 민주주의가 퇴보한 것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보다 점수가 높은데, 일부 명단을 보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우루과이 97점, 일본 96점, 사이프러스 93점, 팔라우 92점, 벨리즈 87점, 몽골은 84점을 받았다. 몇년간 한국의 점수를 낮춘 것은 부패, 소수자 권리에 대한 존중 결여, 친북이라고 간주되는 견해에 대한 ‘국가 안보’ 차원의 제재 등이다.

박근혜 정부의 스캔들은 이런 결함들을 강조해줬지만 2017년 그의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을 입증했다. 한국인들의 자국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2019년에 견줘 2021년에 더 커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왜 일부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말하기 시작했을까? 퓨리서치센터의 19개국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정파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윤석열 대통령이 1%포인트 미만의 득표율 차이로 승리한 대선에 대해 독설이 가득한 분위기를 보면 이는 놀라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의 우려는 세계적 흐름도 반영한다. 세계화는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했고, 한국은 산업화한 국가들 중 소득 격차가 두번째로 크다. 한국 유권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끈 정당들에 대해 불만이 커졌다. 기술 발전은 이런 불만족을 표출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를 만들어냈다. 음모론이 어디에나 퍼지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음모론은 아직도 돌아다니고,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음모론도 번졌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다른 특유한 요인들도 반영한다. 한국 정당들은 보통 특정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이념적 플랫폼 같은 것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논쟁적 정치 환경에서는 ‘개딸’과 ‘이대남’ 같은 ‘부족’이 출현해 정치적 타협이 어려워진다. 성이나 나이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구분이 이런 ‘부족’을 보강한다.

한국은 페루나 미국을 흔드는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군사 쿠데타 위험도 없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걱정스럽다. 한국에는 1970년대에 독일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동방정책을 함께 수용한 것처럼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난 미래를 위한 기후정책을 펴야 한다. 만연한 불평등 해소 정책도 필요하다.

이런 시급한 과제들을 지닌 한국은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떻게 그것을 이루느냐를 두고 이견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이게 민주주의의 양면이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목소리와 함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목소리도 부여한다. 민주주의의 성공 비결은 일부 사람들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과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책을 찾아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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