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미래] 이머징 시티즌의 등장과 사회 전환의 필요
[뉴노멀]
[뉴노멀-미래] 박성원 |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내 미래를 상상해보면 이미지 하나가 떠오른다. 휠체어를 탄 모습이다. 아직 중년에 건강하지만 나이가 들면 여러 이유로 병이 들어 눈이 멀거나 다리가 부러져 휠체어를 탈 수 있다. 100살 시대에 노인들은 많아질 것이며, 65살 이상 고령 장애인 또한 증가하기에 내 상상은 꽤 현실성이 있다.
광주전남연구원 심미경 박사에 따르면 전국의 등록 장애인은 2007년 210만명에서 2021년 264만명으로 2007년 대비 26% 증가했다. 이중 고령 장애인은 2007년 68만명(등록 장애인의 32.4%)에서 2021년 135만명(등록 장애인의 51.1%)으로 급증했다. 특히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전남, 전북, 경북 지역의 고령 장애인이 큰 폭으로 늘었다. 노인이 되어 장애를 입은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심미경은 “고령 장애인이 겪는 노화와 장애의 이중고는 향후 국가와 지역사회의 큰 숙제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경고했다.
나의 미래이자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 고령 장애인 두명을 만났다. 70대 남성 고령 장애인은 대학을 나와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다. 과거 척추 수술을 몇 차례 했으며 지금은 “대소변을 억지로 빼내는 장치를 달고 하반신이 마비되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겪는 고통에 대해 “작열통처럼 피부가 타는 고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발현이 되지 않았을 뿐 누구나 장애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존엄한’ 생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존엄한 생존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휠체어를 타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삶”이라며 “해마다 지자체에서 보도블록을 새로 깔고 있지만 장애인이 다닐 길은 여전히 없다”고 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장애인의 다양한 능력을 사회에서 발휘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60대 여성 고령 장애인은 암 투병과 지체 장애, 불편한 거동으로 거의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곁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요양보호사가 없으면 일상이 불가능해진다. 항암치료를 받는 날이면 병원에 온종일 입원해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며칠을 앓아눕는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다. 인근 교회 교인이나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걸 수 있지만 미안해서 참는다. 이들은 그에게 삶을 지탱하는 의지처가 되어준다.
그는 “매월 30만원을 정부로부터 받는데 임대아파트 관리비로 13만원을 내고 병원에 갈 때 차비 등을 빼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며 “요양보호사가 직접 쌀도 가져오고 반찬도 해줘서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달에 한번 병원 가는 길에 밖을 구경하는데, 이때 ‘꽃이 많이 피었구나. 벼가 많이 자랐다’고 느낀다며 혼자라도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의 저자 백정연 작가는 “최근 무인점포들이 많아져 장애인들을 더욱 곤란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곳에 있는 키오스크는 비장애인의 키 높이에 맞춰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해놓아 휠체어 탄 사람들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다. 키오스크에는 점자가 없어 시각장애인도 이용하기 어렵다.
나도 장애인이 되면 이들이 매일 겪는 좌절의 세계에 들어갈 것이다. 이 미래가 도래하지 않도록 장애인의 이동권리, 탈시설 지원, 평생교육 보장을 주장하며 정부와 힘겹게 싸우는 시민들이 있다. 이들을 ‘이머징(emerging, ‘새롭게 떠오르는’ 뜻) 시티즌’, 우리말로는 ‘창발적 시민’으로 부르고 싶다. 미래에 전면화할 문제를 앞서 보여주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다.정부 관료들은 이들의 시위를 막지만 말고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사회로 전환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주기 바란다. 당신들의 미래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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