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복지”는 약자를 위한 복지가 아니다

한겨레 2022. 12. 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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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지난 9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복지정책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인터넷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지난 9월15일 안상훈 사회수석이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을 담은 공식 자료를 찾지 못했다. 간신히 구한 것이라곤 안 수석 발언을 녹취한 것이 전부였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그것도 “두고두고 지속 가능할 한국형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보도자료조차 없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민생 문제가 얼마나 위급했으면, 발표문 한장 준비 못 하고 사회수석이 급하게 구두로 일국의 복지정책 방향을 발표했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다. 하지만 사회수석이 구두로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은 부정확한 논거와 현실 인식이 넘쳤고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도 아니었다.

몇가지만 간단히 짚어보자. 먼저 안 수석의 말처럼, 정말 “정치 과잉과 포퓰리즘으로 득표에 유리한 현금복지제도가 무차별적으로 확산”했나?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민주화 이후 우리가 도입한 소득보장정책은 국민연금,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아동수당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도입한 정책과 기초연금과 같이 심각한 노인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제도화한 소득보장정책들이다.

국민이 직면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이런 필수적 정책을 “무차별적인 현금복지제도”라고 비난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민생에 눈감고 복지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논쟁적인 현금 지원 제도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근거로 필수적인 소득보장정책을 “포퓰리즘에 의한 무차별적 현금복지제도”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실은 안 수석 주장과 정반대다. 오이시디 최신 자료를 보면 그의 주장과 달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보장 지출 비율은 4.3%로 사회서비스 지출 비율 6.2%보다 낮다. 이런 한국의 소득보장 지출 비율은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인 11.5%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사실이 이런데도 그는 “현금복지제도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국가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과도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고 “국가 경제가 전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채 문제 또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한국의 정부 부채는 지디피 대비 60% 수준으로 오이시디 평균인 95%보다 낮다. 반면 ‘글로벌 부채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2022년 1분기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104.3%로 36개국 중 가장 높았다. 국가 부채보다 가계 부채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수석이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모범 사례로 언급한 “약자 중심, 서비스 복지 중심”의 “어떤 나라”도 현실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복지국가라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중심의 복지국가라면 북유럽과 영미권 국가가 있다. 안 수석이 언급한 모델이 북유럽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 복지국가는 중산층에 기초한 복지가 약자를 포괄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이지, 약자를 위한 복지가 중심인 국가가 아니다.

그 사례가 영미권 국가를 지칭한다면, 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약자를 중심으로 공적 복지가 제도화되어 있지만, 급여 수준은 낮고 시장의 역할이 커 불평등과 빈곤이 고착화되어 있다. 보편적 복지 없이 약자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는 없다. 현실 세계에서 세금은 주로 중산층이 내는데 취약계층만 두터운 복지를 누리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안 수석이 그런 신묘한 계책을 갖고 있다면 듣고 싶다. 나는 그런 복지 정치를 알지 못한다.

안 수석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던 연대도 약자복지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연대는 중산층과 빈자가 사회적 위험에 함께 대응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좋은 복지국가는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와 취약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 둘 다 필요하다. 보편적 아동수당을 도입해도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추가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이게 다 약자 잘되라고 하는 정책이야”라고 말하지 말자.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약자를 위한 복지를 두텁게 하고 싶다면, 약자만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 중산층이 함께 누리는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그게 진짜 약자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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