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치가 우선한다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최원형 | 책지성팀장
2022년 한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나왔던 책들 가운데 ‘단 한권’으로 영국 사회학자 파올로 제르바우도의 <거대한 반격>(다른백년)을 꼽아본다. 이 책은 현재 국면을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기로 보고, 명료한 모형을 동원해 신자유주의 이후 정치철학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분석한다. ‘반격’으로 번역한 단어는 ‘recoil’(리코일)로, 총 같은 걸 쐈을 때 뒤따라오는 반동, 되튐 등을 의미한다. 애초 쏘아졌던 것은 무엇인가? 지난 세기 전세계를 장악했던 정치적·경제적 교리인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전후 사회민주주의적 합의 위에 세워졌던 복지국가의 이상은, 전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면 자본주의 체제가 맞닥뜨린 성장의 정체를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전에 없던 부까지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아래 허물어졌다.
<거대한 반격>의 알짬은,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외향정치’이며 이에 대한 반동은 ‘내향정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헤게모니나 포퓰리즘 등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이론에 주로 영향을 받은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불평등 확대와 2009년 금융위기 등으로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찾아온 것이 2010년대 ‘포퓰리즘 계기’라 부르는 국면이라 본다. 이는 포퓰리즘(주로 우파)의 대두를 기존 신자유주의의 연장선 위에서, 대체로 그것이 권위주의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들과 구분된다. “21세기 포퓰리즘 담론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안티테제이자 전도(inversion)에 해당하며, 다시 말해 포퓰리즘은 반신자유주의를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는 전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외주화·금융화 등 끊임없이 ‘외부’로 향했으며, 이를 위해 특정한 지역이나 장소, 그에 기반한 정체성 등 ‘내부’를 지우고 약화해왔다. 그러니 이에 대한 반동은 자연히 다시 내부로 향한다. 팬데믹을 거치며 경계, 국가와 주권, 정체성, 안전 또는 보호, 통제 등 과거 신자유주의의 사도들이 코웃음 치며 내팽개쳤던 가치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포퓰리즘 시기 이후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지워왔던 “정치공동체의 장소적, 영토적 성격”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주권-보호-통제를 삼위일체로 삼고 내부로 향하는 ‘신국가주의’가 포퓰리즘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정치적 뉴노멀’이라 제시한다.
이렇듯 내부화로 호출된 ‘국가’로 하여금 어떤 주권에 근거하여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통제하도록 할 것이냐, 결국 이것이 오늘날 정치가 응답해야 할 핵심 질문으로 다시금 떠오른다. 이 질문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아무리 긍정적인 형태를 상상하려 해봐도 국가와 주권-보호-통제라는 말에는 구조적인 착취 기관으로서의 국가, 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인 지배, 배타적인 공동체주의 문화,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 같은 개념들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에서도 ‘진보적(민주적) 애국주의’에 대한 주장이 몇차례 제기됐으나, 이런 이유로 다양한 반론과 비판에 부닥친 바 있다.
<거대한 반격>은 우파의 ‘유산자 보호주의’(proprietarian protectivism)와 좌파의 ‘사회 보호주의’(social protectivism)를 맞세우는 전략으로 이를 돌파하려 한다. 같은 그릇 안에 다른 내용물들을 담을 수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국가의 보호는 일부 ‘토착민’이 아닌 모든 ‘거주자’에게, 자본주의 가치사슬에 기여한 만큼이 아니라 부족해서 더욱 필요한 만큼, 재산이 아니라 일자리·보건·교육·환경 등 사회적 자원들을 대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이런 분석은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딱딱하게 굳어진 경제지상주의를 뒤집고 다시금 “정치가 우선”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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