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빚더미 올라앉는데, 감세 포퓰리즘 덫에 빠진 정치권
소득세, OECD 평균 밑돌지만… 野 "더 줄여"
나라가 올라앉은 빚더미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피해를 줄이느라 확 늘린 지출 탓에 매년 100조 원 수준의 대규모 재정 적자가 3년째 이어지면서다. 설상가상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에 당장 내년 경기 침체가 예고돼 돈 들어갈 곳은 많은 상황. 그러나 정치권은 오히려 ‘감세’ 경쟁으로 뜨겁다.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의 덫에 빠진 형국이다.
코로나19의 그림자
윤석열 정부는 어떤 정권이든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준칙’을 법제화하겠다고 총대를 메고 나섰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적자 탓에 어려워진 나라 곳간을 보며 느낀 위기의식에서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00조 원을 넘길 공산이 크다. 10월까지 86조3,000억 원에 달한 누적 적자와 10조 원 안팎인 최근 3년간 12월 적자 규모를 감안한 추계다.
규모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세다. 2018년 10조6,000억 원 수준이던 적자는 2019년 54조4,000억 원으로 뛰더니, 코로나19 첫해엔 112조 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100조 원 근처(90조6,000억 원)에서 고공행진했다. 빚도 자연스레 늘어 지난해(2021 회계연도)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가 1년 전보다 12.8% 많은 1,066조2,000억 원까지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도 2.8%포인트나 높아지며 처음 50%대로 올라섰다(51.5%). 전년 상승폭(6.6%포인트)에 비해 둔화했다지만, 같은 기간 7.4%포인트 상승에서 1년 만에 3.4%포인트 하락으로 아예 방향이 바뀐 북유럽 4개국 등 다른 긴축 국가들과 견줄 때 한국 정부가 실기(失機)한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윤 정부가 ‘방만 재정’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어색한 의기투합
감세는 전통적으로 시장주의 우파 정부가 미는 세금 정책이다. 세금을 덜 걷으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가 확대되며, 세수 증가로 선순환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을 추앙한다. 빚에 쪼들려도 씀씀이를 줄일지언정 세금을 더 많이 걷겠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춰 국내 기업 투자를 늘리고 해외 기업을 유치하자는 정부ㆍ여당의 제안은 이런 정체성에 기반한다. 이에 진보를 표방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초부자 감세 저지’라는 구호로 맞서며 대립 중이다.
어색한 것은 여야의 ‘소득세 감세 의기투합’이다. 정부가 최저세율 6%가 적용되는 과표 구간을 1,200만 원 이하에서 1,400만 원 이하로 상향 조정하는 소득세 감세를 추진하자, 민주당은 한술 더 떠 1,500만 원으로 올리자고 주장한 것이다. 감세를 두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우위를 선점하려는 모습인 셈이다.
그러나 ‘서민 감세’라는 생색을 내기에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정부안의 경우 1인당 세수 감소 효과는 월평균 최대 4만5,000원 수준”이라며 “가장 낮은 과표 구간을 확대해 봐야 납부 규모가 작은 서민ㆍ중산층 지원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정부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야당안에도 적용된다. 더욱이 소득세 면제 혜택을 받는 근로자 비중이 37.2%(2020년 기준)에 달하고, GDP 대비 소득세 수입 비중(5.3%)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1%)을 밑도는 한국에 필요한 것은 감세가 아니라 증세라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 의견이다.
‘제로섬 게임’을 넘어
낙수효과든 서민 감세든 여야의 기조는 ‘조세 회피’ 성향을 지렛대로 삼는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세수 총량 자체는 그대로 둔 채 어느 쪽이 더 내느냐는 기여도만 쟁점으로 삼는 것은 거대 양당 둘 다 마찬가지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금을 기꺼이 더 내기보다 다른 계층에 떠넘기려는 ‘표심(票心)’을 한국 정치권이 극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연구원장은 최근 “‘누가 더 내고 누가 덜 낼 것인가’라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세제 개편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출생ㆍ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 증대와 본격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복합 위기’는 재정 역할 강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경제가 위기일수록 소득 재분배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만큼 차제에 증세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며 유럽 등이 추진하는 ‘횡재세’처럼 우선 코로나19 기간 동안 외부 요인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한 기업ㆍ업종에 대한 과세를 통해 취약계층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단기적으로 세 부담을 줄여 주더라도 경기가 좀 나아지면 세입 확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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