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사과도, 잘못 시인도 없는 2022년 겨울

2022. 12. 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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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얼마 전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은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꼬집는다. 하지만 과이불개라는 말은 현 세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반성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데,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거나 설사 알아도 애써 인정도, 시인도 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잘못된 행위도 바로 잡을 수 없다.

얼마 전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면설이 회자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지사의 특별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야당에게 김 전 지사의 석방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으면서 형 종료 후 5년 간 피선거권도 박탈됐다. 따라서 2027년 5월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이를 우려하듯 친문 의원들은 김 전 지사의 사면만이 아니라 복권까지 요구하고 있다.

김 전 지사의 혐의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는 댓글로 대통령 선거 기간 여론을 조작한 혐의를 받은 '드루킹 사건' 연루자이다. 선거 방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엄중한 죄 중 하나다. 더구나 김 전 지사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권 요구는 적반하장의 논리이다. 자칫 김 전 지사의 범법 행위를 소영웅주의로 미화시킬 우려마저 낳는다.

편파성 논쟁으로 올해 말 폐지되는 TBS '뉴스공장'의 공장장 김어준씨가 과거 방송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김씨는 그동안 편파성을 지적하는 외부 지적에 오히려 당당했다. TBS 역사상 유례없는 청취율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왔다. 상업방송이 아니라 공영방송 진행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공정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권력에 의해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양 행세를 하고 있다. 잘못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가 없으니 개선이 있을 리 없다

대장동 사건의 전직 언론인 김만배씨는 모든 기자를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지난 5년간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취재와 보도가 아니라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개인 이익을 도모하는 법조 브로커였다. 그럼에도 그와 그가 소속됐던 언론사가 이에 대해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반성이 없기에 개선도 없다. 언론윤리가 없기에 지금 제2의 '김만배'가 법조 브로커로 성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1985년 8월 12일 일본 도쿄를 출발, 오사카로 향하던 일본항공(JAL)의 여객기가 군마현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520명이 사망했다. 단일 비행기 사고로 역대 최대 규모다. 10일 뒤 미국 텍사스 댈러스 국제공항에서는 델타항공사의 여객기가 착륙 도중 추락, 13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0일 간격의 사고였지만 두 회사의 대응은 달랐다. 일본 JAL의 다가키 야스모토 회장은 사고 발생 4시간 뒤 곧바로 사고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유가족에게 고개 숙였다. 반면 델타항공은 유가족에게 애도를 건넸지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서로 다른 위기 대응 방식을 문화 차이로 설명한다. 유교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여객기 사고가 발생하자, 회장이 회사를 대표해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나흘 뒤에는 사표를 제출했다. 반면 개인주의 성향의 미국에서는 사고 원인과의 명백한 관련성이 발견되어야만 사과를 한다. 기장의 무리한 착륙 시도가 사고 원인이 아니냐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 당시 델타항공은 "그는 누구보다 우수한 조종사"라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논쟁은 한국 사회가 점차 미국 사회를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고 직후 희생자에 대해서는 애도를 했지만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고 원인과 관련된 직접적이고 명백한 잘못은 없었다고 모두 말한다. 158명의 생명이 희생됐지만 원인 제공자는 딱히 없었다.

물론 사고 후 우왕좌왕한 경찰관과 소방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또 당일 경찰 배치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요구와 수용할 수 없다는 대립 역시 소모적인 정치 공방이 되었다.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실된 사과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2022년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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