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학 칼럼] 공짜 개혁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의 칼을 꺼내들었다. 화물연대 원칙대응 이후 올라간 지지율에 자신감을 얻은 분위기다.
그는 며칠전 TV로 생중계된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연금·노동·교육개혁의 필요성과 각오를 역설했다.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3대 개혁은 인기가 없어도 반드시 하겠다." 윤 대통령이 개혁에 시동을 걸자 참모들도 연이어 개혁과제를 논의, 동력을 키우고 있다.
반문(反文)바람을 타고 정권을 잡은 윤 대통령으로선 개혁 어젠더 설정을 잘했다. 나랏돈 퍼주기와 친노동계로 기울어진 균형추를 바로잡지 않고선 정권교체 의미가 약해진다. 우리나라는 무역적자, 고령화, 적자 복지라는 선진국 증후군 성격의 '한국 병' 초기증세를 보인다. 초기에 메스를 대지 않았다간 병은 만성화된다. 10년내 우리는 '한강의 기적' 국가에서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지금이 개혁의 골든 타임이라고 본 것은 현명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기득권의 반발이 거세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와 군(軍)하나회 척결 같은 개혁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하지만 정리해고 도입,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등 노동개혁을 여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처리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노동계 총파업에 직면, 법률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개혁제도를 철회한 것. 개혁에 실패한 이후 나라는 외환위기라는 격랑에 휘말렸다.
개혁의 3대 요소로 △비전 △개혁추진세력 △지지세력 등 3가지를 꼽는다. 세 가지 모두가 필요충분조건이다. 어느 하나 빠져도 개혁은 실패한다. 조선 중기의 조광조 개혁, 말기의 갑신정변 등 수많은 개혁의 실패사(史)가 이를 반증한다.
지금 대한민국 개혁의 3대 요소는 어떤가? 첫째 연금·노동·교육개혁을 통해 무엇을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국민에겐 와닿지 않는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벤투 감독은 팀 플레이를 중시하는 '빌드 업' 전술로 16강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워 성공했다. 국민도 이런 목표에 호응하고, 열렬히 응원했다. 개혁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3대 개혁을 통해 한국을 어떤 나라로 올려놓겠다는 비전을 내놔야 한다.
둘째 개혁추진세력은 거야(巨野)에 가로막혀 열세다. 2년 뒤 총선에서 여대야소가 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기엔 작금의 상황이 한가롭지 않다. 여당은 현실적으로 야당을 설득하는 게 난망하다고 본다. 국민 우군을 확보해 야당을 압박하려는 전술을 쓰고 있다. 국민 패널을 참여시킨 국정과제점검회의를 TV로 생중계한 것도 그래서다.
독일은 1990년대말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기를 개혁으로 돌파했다.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사민당과 녹색당 연합으로 정권을 잡자 수출부진, 저성장, 국가부채 급증을 해결하려고 고용 유연성 제고, 복지 축소 등의 '하르츠 개혁'을 밀어붙여 성공시켰다. 좌파였지만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다.
문제는 2005년 치러진 총선에서 슈뢰더의 사민당이 복지축소에 반발한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정권을 빼았겼다는 점이다. 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다행히 메르켈의 보수정권이 개혁에 공감, 사민당과 대연정을 이뤄내 개혁을 완성했다.
'독일 병'을 치유했던 슈뢰더의 개혁은 정권을 잃는다는 교훈도 남겼다. 국민의 힘은 2년 뒤 입법부를 장악해 개혁입법을 밀어붙였다가 차기 대선에서 질 수도 있다. 보수세력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먹고 살기 바쁜 민초들이 얼마나 개혁에 호응할까? 게다가 '더 내고 늦게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은 종부세 조세저항을 뛰어넘는 강한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연금 지급시기를 70세까지 늦추려는 이탈리아 등에서도 그랬다. 50∼60세에 퇴직하는 한국 고용문화에서 국민연금에 의지하는 잠재적 은퇴실업세대가 연금축소안에 박수쳐줄까?
적게 주고 나서 나중에 더 주는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먹혀도, 많이 줬다가 나중에 빼앗는 조사모삼(朝四暮三)은 저항을 부른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공짜 개혁도 없다. 개혁을 이루겠다면 국회의원 특권 포기같은 개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부터 실천하라. 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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