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55년 만에 ‘소련 스파이’ 불명예 씻어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68년 만에 공식적으로 소련 스파이 혐의를 벗었다. 1967년 사망한 지 55년 만이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오펜하이머의 보안 접근 권한에 대한 1954년 원자력에너지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랜홈 장관은 “오펜하이머 박사에 대한 결정에 편견과 불공정성이 적용됐다는 증거가 많이 드러났다”며 “국가를 향한 그의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는 증거는 앞으로도 확인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위원회가 자체 규정을 위반해 결함 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봤다.

오펜하이머는 1940년대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으로서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 연구를 통해 미국은 최초의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2발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해 2체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후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더 강력한 핵무기 개발 요구가 거세졌다. 냉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원자폭탄의 위력을 1000배 뛰어넘는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같은 요구에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을 본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원자력에너지위원회 자문위원회 의장으로서 수소폭탄 연구를 지연시켰다.

그러자 의회 보좌관 출신 인사가 1953년 연방수사국(FBI)에 서한을 보내 오펜하이머가 소련의 스파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듬해에 오펜하이머에 대한 청문회까지 열렸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또 다른 과학자인 에드워드 텔러가 “오펜하이머의 방해가 없었다면 수소폭탄 개발이 더 빨라졌을 것”이라는 증언을 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결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는 19차례 극비 회의 끝에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관련 정부 기밀정보 접근 권한을 차단해버렸다. 이후 모든 공직에서 추방당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도 불명예스럽게 마감하게 됐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