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나이 불문 …'감원 쓰나미' 시작됐다
80년대생 중간간부로 확대 … 왓챠 등 스타트업도 구조조정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은 주요 업종에서 인력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14일부터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대리급 이상·근속연수 15년 이상 직원이 대상으로, 조건에 해당하는 직원은 전체 인력의 15%인 160여 명이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맏형 격인 롯데면세점의 구조조정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지난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호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면세점 인력의 자연 감소가 많았음에도 추가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것은 예상 밖"이라며 "진짜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산업계에서 인력 감축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유통업계까지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감원 칼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 경기 악화가 확실시되자 선제적인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에 앞서 롯데하이마트도 13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2020년 80여 명의 현장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 이후 2년 만이다. 팬데믹 특수가 끝나고 이커머스 플랫폼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3분기까지 누적 72억여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푸르밀이 사업 종료 결정을 철회하는 대신 직원 30%를 구조조정하기로 했고, 하이트진로도 근속연수 15년 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등 인력 구조조정이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증권업계도 살풍경이다. 전사적인 희망퇴직은 물론 부동산이나 투자은행(IB) 관련 부서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직장을 떠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KB증권은 1982년생 이상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지난 15일까지 회사 인력 구조 개선을 위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중소형 증권사들은 이미 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선제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다올투자증권은 지난달 신입사원을 제외한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고, 하이투자증권도 최근 1967년생(56세) 이상 및 근속연수 20년 이상 고직급에 대해 희망퇴직을 받았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지난달 법인부와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올해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는 은행권도 희망퇴직을 속속 진행하고 있다. 작년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희망퇴직 규모를 늘린 곳도 있다. 여유가 생겼을 때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해 불황에 대비하자는 취지에서다.
NH농협은행은 이번주 최종 퇴직자 공지를 앞두고 있다. 규모는 500여 명으로 지난해(427명)보다 다소 늘었다. 퇴직금이 후해진 덕분이다. 월평균 임금의 20~28개월 치를 받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20~39개월 치까지 받는다. NH농협은행에서 약 500명의 희망퇴직자가 곧 확정되면 올해 들어 5대 은행 희망퇴직자 규모만 2400명에 육박하게 된다.
은행권 전체적으로는 희망퇴직자가 3000명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우리은행도 19일부터 27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관리자, 책임자, 행원급에서 각각 1974년, 1977년, 1980년 이전 출생자가 대상이다.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K디스플레이 업계도 경기 한파에 따른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임직원에게 계열사 전환근무 신청을 받고 인력 재배치에 나섰다. 전환 배치 시점은 올해 말∼내년 초로, 규모는 200∼300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환 근무 신청자들은 LG에너지솔루션이나 LG이노텍 등 관련 계열사로 배치된다. LG디스플레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올해 2분기 488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도 759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최근 돈줄이 막힌 스타트업 업계도 인력 감축이 한창이다. 배달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본사 인력 중 40%에 해당하는 100여 명이 희망퇴직을 했지만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왓챠, 재능공유 플랫폼 탈잉 등이 이미 구조조정을 실행했고,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업계 1위 샌드박스네트워크도 인력 감축을 시작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대표 게임사들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대신 신규 채용 축소 및 경력자 중심 채용, 인력 재배치, 급여 및 인센티브 상승률 조정 등을 통한 경영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전 산업계로 확산되면서 취업자 수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1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계절조정 취업자 수는 2813만9000명으로 10월보다 2만8000명 줄었다. 계절조정 취업자는 지난 9월과 10월에도 각각 전월보다 2만2000명, 5000명 감소했다. 계절조정 취업자 수가 3개월 연속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 2∼4월 이후 처음이다.
감원 칼바람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메타, 트위터,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에서 시작된 '해고 쓰나미'가 월가로 번지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내년 1월 전체 인력의 최대 8%(약 3900명)를 해고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김대기 기자 / 김명환 기자 / 채종원 기자 /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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