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불명예 3관왕' 걱정되는 예산국회
국회의 허언증이 결국 민생을 볼모로 잡았다. 거시경제 위기발 가계 및 소상공인 연쇄 파산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책임져야 할 내년도 예산안은 여전히 국회를 공전하고 있다. '민생이 최우선'이란 여야 지도부의 공언(公言)은 결국 당리와 정쟁으로 공언(空言)이 된 지 오래다.
무엇보다 예산안 협의가 장기화하면서 불명예스러운 신기록도 쏟아지고 있다. 올해 예산안은 국회선진화법 도입 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내 처리가 불발됐다. 또 정해진 법정기한(12월 2일)보다 가장 늦게 통과될 예산안 최장 지각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칫 헌정사 이래 최초의 준예산 편성 기록까지 달성이 가능한 상황이다. 불명예 3관왕이 우려된다.
국회의장 중재조차 불발된 국회 예산안은 또다시 국회선진화법 불용론을 상기시켰다. 국회는 '동물국회'를 방지하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다. 2002년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조기 통과시킨 후 10년 넘게 법정기한을 못 지키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2014년과 2020년 등 두 차례에 불과하다.
물론 올해 예산은 첫 윤석열 정부 편성예산으로 어느 정도 진통은 예견됐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인 2018년과 2019년에도 각각 6일과 8일 지각 통과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소야대로 국회의 균형추가 크게 기울어졌고 10월 말 발생한 이태원 압사사고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변수로 작용하며 정부 입장에선 겹악재를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 국민을 돌봐야 할 예산 통과 지연의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내년도 역시 2년 차 정부 예산으로 여소야대 형국이 그대로 유지된다. 즉 현재 상황과 크게 달라질 환경은 없다.
허언증은 주변의 이목을 끌고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관종'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종의 습관이다. 볼모로 잡힌 민생은 국회라는 관종에 관심 둘 여력조차 없다. 나쁜 습관은 하루라도 빨리 고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현재진행형인 국회 허언증이 내년 이맘때엔 '과거완료형'으로 완치돼 있길 바란다.
[추동훈 정치부 daera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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