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담당자들 “주 52시간 안 지켜도 되면? 당연히 인력 감축”
인사담당·노무사 의견 들어보니
정부가 내년 상반기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키로 한 가운데, 이러한 개편안이 현실화되면 기업들이 고용 인력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작업량이 몰리는 특정 기간에 ‘몰아치기 노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으므로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여유 인력을 더 이상 확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8일 <한겨레>가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해 의견을 물은 중소기업 인사(HR) 담당자와 회사 쪽 인사·노무관리 자문 노무사들은 “일이 몰릴 때 집중근로를 할 수 있어 현재보다 인력을 감축하게 될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노동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대정부 권고에 따라 현재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 이상으로 넓혀 관리하게 되면, 특정 주에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69시간(주 6일 근무) 혹은 80.5시간(주 7일 근무)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주 52시간 상한을 지킬 필요가 없어지면 기업은 인력감축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왔다. 직원2천여명 규모의 제조업체 인사담당자 ㄱ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한 공정에 10명이 필요하다면 휴가·휴직으로 발생하는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보통 11~12명을 배치한다”며 “1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다면 결원을 보충하기 위한 여유 인력을 둘 필요가 없어 인력 티오(TO)를 줄일 수 있고 이는 기업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주로 운수·보건업종 중소사업장 노무관리를 자문하는 노무사 ㄴ씨도 “(연장근로 관리가 확대되면) 성수기에 주 6~7일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 결원(휴가·휴직 등)이 발생해도 연장근로를 원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켜 인력 공백 없이 사업을 운영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담당자가 많이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지적이 쏟아진다. 한 인사담당자는 “기업에서는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늘릴 수 있으니 추가 고용을 하지 않고 야근 시간을 법적 한도까지 늘릴 것”이라며 “일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몰릴 때 몰리는 법이라 추가 고용 없이 어떻게든 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인사담당자도 “사회 통념 안에서 상식적으로 제도를 이용하는 회사라면 괜찮겠지만, 법을 악용하는 회사가 존재하고 이는 노동자 삶과 생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유연근로제(유연근로시간제)를 운영하면 될 텐데 굳이 이렇게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바꿔서 이익을 얻는 집단은 어디겠느냐”고 지적했다. 지금도 유연근로시간제를 통해 최대 6개월까지 업무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대표적인 유연근로제 가운데 하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인데, 최대 6개월까지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유지하는 대신 업무량이 많은 특정 주에 52시간을 넘겨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러한 제도에 따라 1주 52시간을 넘겨 최대 64시간까지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 중인 삼성에스디아이(SDI)의 한 생산직 노동자는 “지금도 인력 충원이 안 돼 밤 11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일하고, 오후 3시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며 “(정부 추진안은) 일이 많을 때 사람 안주고, 있는 사람 최대한 굴려 기업들 돈 아끼게 해주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지난 10월 주·야 맞교대로 밤샘 야근을 하던 청년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에스피씨(SPC) 계열사 에스피엘(SPL)에서 일하는 지윤선(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에스피엘지회 회계감사)씨도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지면 최대 이익을 내려는 회사는 당연히 이를 사용하려 할 것”이라며 “주 52시간 근무도 힘든데 주 69시간이 되면 살인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변경은 장시간 노동 관행을 바꿔 노동자 건강권과 일·생활 균형 확보뿐 아니라,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주 52시간제 목표를 흔드는 셈이다.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은 건강권 보호뿐 아니라 부수적으로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는 정책적 당위성에 근거한 것”이라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개편이 고용 측면에선 부정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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