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불안이 이성을 지배할 때

2022. 12. 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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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인간이 노력하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만약 우리가 현실과 미래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고 불안이 없다면 개인의 발전은 물론 사회, 문화, 인류의 발전은 매우 더디거나 없었을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찌 보면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전쟁이나 질병, 죽음 등 개인적·집단적·국가적으로 경험했던 공포적 경험들이 자손들에게 유전자를 통해 전달된 것이다.

항생제에 박멸되던 박테리아가 점점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기전을 보면 우선 주변 박테리아에 가지를 뻗어 관을 연결한다. 연결된 관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항생제에 대한 경험을 전수한다. 경험을 전수받은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항생제에 죽지 않도록 진화한다. 하물며 박테리아도 생존을 위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는데 인간이야 더했으면 더했지 못할 리가 없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할 때 불안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하고 주변을 열심히 살피는 행동을 하게 한다. 전쟁 중에도 군인들이 가지는 불안은 생존력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적당한 불안은 우리에게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심한 불안은 독이 된다. 불안의 정도가 너무 심해지면 이성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한다. 지배당한 이성은 불안을 가지는 이유를 합리화하거나 불안을 빨리 없애려는 쪽으로만 진행된다.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은 우리 이성을 재빨리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1920년대 초 일본에 심한 지진이 발생하여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40만명에 달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본사람들을 지배했다. 정부는 공포가 분노로 바뀌어 정치권으로 옮겨붙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심하게 느꼈다. 극심한 불안이 이성을 지배하면서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어느 순간 조선사람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사회 폭동을 모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일본사람들은 그간 느꼈던 공포불안만큼이나 분노를 느꼈고 이런 소문은 조선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태원 참사로 인한 공포에 가까운 불안이 우리를 휘감고 있다. 누구나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고 재난을 당할 수 있기에 이런 사건들이 생기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포이다. 따라서 이런 감정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정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공포불안이 타인에 대한 혐오나 분노, 사회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로 연결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잘못된 부분은 솔직히 전달해서 향후 개선해야 한다. 완벽한 인간도 없고 제도와 시스템도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아는 진리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몰았던 것처럼 근거 없이 남 탓을 하는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진실을 전달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마음 깊이 위로하는 것이다.

[정재훈 아주편한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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