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그래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심지어 전쟁까지 멈추게 해
의미 더하는 것은 동시대인 몫
조건 없는 위로와 사랑 전하길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던 독일군 참호에서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노래는 서부전선을 넘어 영국군 참호까지 전해졌고 이내 거대한 합창이 됐다. 두려움과 적의에 둘러싸여 있던 춥고 황량하던 전쟁터에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진 것이다. 연합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함께 불렀다. 많은 병사들이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다음날 아침, 영국군 참호에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중립지대로 떨어졌다. 대여섯 명의 영국군 병사들이 공을 보고 뛰어나와 공을 차기 시작했다. 이를 본 독일군 병사들도 뛰어나왔다. 이렇게 해서 '영국 vs 독일' 즉석 축구 경기가 성사됐다.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킬리안 음바페의 프랑스가 다툰 카타르월드컵 결승전보다 더 멋진 축구 경기였다. 경기는 독일이 3대2로 승리했다.
크리스마스는 전쟁마저 멈추게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다. 물론 처음부터 크리스마스에 이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00년대까지 크리스마스는 유럽의 종교적 전통과 이교도의 전통이 혼합된 그저 그런 휴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00년대 중반, 그러니까 1843년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출간될 즈음이었다. 디킨스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잘못을 깨닫고 이웃의 아픔을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대부분 이때 나온 것만 봐도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이때 형성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1839년에, '거룩한 밤'이 1847년에, '징글벨'이 1857년에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크리스마스가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됐다. 그 시작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공표했다. 이때부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축제 기간으로 만들었다. 남북전쟁으로 찢긴 미국을 하나로 화합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서 셋째 주 목요일로 한 주 앞당긴다. 추수감사절에서 크리스마스까지 소비 시즌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크리스마스에 상업적인 의미가 더해진 셈으로 감사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도 했다. 이렇듯 크리스마스는 역사 속에서 그 의미가 더해져 왔다.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고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주 노송동에는 23년째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타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다. 이 천사는 매년 노송동주민센터 앞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성금을 두고 사라지는데,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9억원이 넘는다. 이 이름 없는 천사 덕에 노송동은 '천사마을'이 됐다. 주민들도 천사마을카페를 운영해 그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 등 마을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사랑은 전염돼 완주군 비봉면에는 17년째 햅쌀을 기부하는 천사가 나타났고, 익산에도 10년째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붕어빵' 천사가 나타났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어떤 의미를 더해야 할까. 견딜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여전히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추모와 위로마저 정치적 유불리로 계산되고 있다. 올해 성탄은 그들에게 조건 없는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멀리 우크라이나에서도 108년 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휴전'을 넘어 '크리스마스 종전'이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김기철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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