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도 전당대회도···국민의힘 ‘용산바라기’ 점입가경

정대연·조문희·문광호·탁지영 기자 2022. 12. 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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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퇴장하며 장제원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기자단

국민의힘의 ‘용산(대통령실) 바라기’ 행보가 점입가경이다. 집권 7개월이 넘었지만, 민심을 대통령실과 정부에 전달하는 여당 역할을 망각한 채 당 전체가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만 바라보는 상황은 더 심해지고 있다. 당 지도부보다 윤 대통령 뜻을 전하는 몇몇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발언에 더 힘이 실린다. 용산의 뜻이 국민의힘을 장악하면서 당 지도부가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사라지고 정당정치가 실종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편성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가 도입된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가장 늦은 처리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예산안 국면 장기화에는 용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법정처리시한(12월2일)이 16일이나 지난 18일까지도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폭과 시행령으로 설치된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문제로 꽉 막혀있다. 여당의 협상 책임자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9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못 낮추면 23%나 24%는 안 되냐고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전부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법인세 인하율을 조정해서라도 합의하려는데, 민주당이 현행 유지(25%)를 고집하고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15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24%로 1%포인트 낮추는 중재안을 제안한 뒤 입장이 달라졌다. 민주당은 중재안을 수용했지만, 주 원내대표는 “해외 직접투자 전쟁이 붙은 상황에서 법인세 1%포인트 내리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거부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공개 발언 등을 통해 원안 고수 의견을 강조한 게 입장 번복 이유로 보인다.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우선 예비비로 지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김 의장 중재안을 여당이 수용하지 않은 데도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조직을 불법으로 낙인찍는다는 대통령실의 반발 기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대응에서도 여당은 용산에 휘둘렸다. 10월29일 참사 직후 국민의힘에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윤 대통령이 최측근인 이 장관을 경질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밝힌 이후 당에서 사퇴 요구는 사그라들었다.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수행팀장을 지낸 초선 이용 의원이 지난달 10일 주 원내대표 면전에서 한 “여당이 왜 이 장관을 지켜주지 못하나”라는 말은 윤심으로 해석됐다. 장제원·김기현 의원 등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야당과 국정조사에 합의한 주 원내대표를 계속 흔들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 시기와 규칙을 결정하는 데서도 윤심이 절대적이다. 윤 대통령이 당무 불개입 원칙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초 내년 3월12일까지인 자신의 임기 연장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윤 대통령이 사실상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정 위원장 임기 종료 전인 내년 3월 초 전당대회 개최가 유력해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여당 의원 등과 만난 자리에서 당원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인 현 규정을 당원투표 100%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고, 친윤석열계 당권주자들 및 초·재선 의원들이 같은 입장을 설파하고 나서면서 비윤계 반발에도 이 같은 방침이 굳어지고 있다.

친윤계 당권주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보다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하는 ‘윤심 마케팅’에 여념이 없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조차 지난 17일 “윤심을 파는 사람일수록 당원의 지지를 받을 자신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압도적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추종만 가지고서 국정 안정과 총선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보다 용산과 윤핵관에 더 힘이 실리는 여당 분위기에 대해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실이)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 주 원내대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민주당과) 서로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다.한 중진의원은 예산안 협상·전당대회 논의를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상황에 대해 “당 지도부가 주체성을 가지고 정부를 견인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은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관여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여야가 협의해 합의에 이를라치면 뒤에서 오더를 내려 국회정치를 무력화시켜 왔다”며 “국민의힘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을 위해 국회의 권한을, 민생에 대한 책임을 내다 버렸다”고 비판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도 “국민의힘은 국민은 신경 쓰지도 않고 오직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다”며 “국민의 삶을 지킬 예산 통과보다 대통령 심기 보전이 더 중요한 것이냐”고 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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