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37세? 20대 품귀...'옛능'이 된 예능

양승준 2022. 12. 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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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는 지상파 예능
'런닝맨' 출연자 평균 나이 45세... 3사 간판 예능 3곳 24명 중 Z세대 1명
코미디언 공채 전면 폐지 등... 실종된 신인 발굴 사다리
프로그램 제목처럼 출연자들이 달리면서 게임을 하는 '런닝맨'에서 출연자 상당수는 중년이다. 양세찬과 전소민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멤버가 모두 40, 50대다. 사진은 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 축구 대표팀과 가나전 경기를 지켜보던 출연자들이 애국가 연주에 맞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SBS 방송 캡처

45세. 대기업 부장단의 평균 나이가 아니다. SBS 일요일 간판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지석진 유재석 등 고정 멤버 7명의 평균 나이다. 양세찬 전소민 두 '막내'의 나이는 37세. 10, 20대가 즐겨 보던 프로그램엔 고정 멤버 중 정작 20대는 단 한 명도 없다. 고령화된 지상파 예능의 현실이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각광받는 한류 콘텐츠였던 '런닝맨'의 기세는 요즘 한 풀 꺾인 분위기다. 시청률은 가장 최근 방송인 11일 기준 3.9%(닐슨코리아·전국)로,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 처음 전파를 탄 MBC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4.6%)를 비롯해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6.0%)에 줄줄이 밀렸다.

'신발벗고 돌싱포맨'은 대표적 중년 예능이다. 막내인 김준호(오른쪽 첫 번째)의 나이가 48세다. SBS 방송 캡처
확산하는 '청년 공동화'

TV 예능이 '늙고' 있다. TV를 떠나고 있는 10, 20대를 불러 모으기 위해 출연자 세대교체가 이뤄지기는커녕 노령화돼 TV 예능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지상파 예능에서 Z세대(1995~2009년 출생)는 가뭄에 콩 나듯 나오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최근 3주 동안 3사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예능은 '1박2일'(KBS)과 '나 혼자 산다'(MBC) '미운 우리 새끼'(SBS). 세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 24명을 조사해봤더니 Z세대는 단 한 명(유선호 '1박2일'·20) 뿐이었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KBS2)를 비롯해 '안싸우면 다행이야'(MBC) '신발 벗고 돌싱포맨'(SBS) 등엔 20대는커녕 30대 고정 출연자(MC)도 없다.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진행자들. 20대는 단 한 명도 없다. KBS 방송 캡처
10대 1,000명 중 999명 "TV 필수 매체 아냐"

이렇듯 지상파 예능이 고령화한 데는 코미디언 공채 시스템이 무너지고 신인 발굴 창구가 막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상파 부장급 예능 PD는 "2020년 '개그콘서트'가 폐지되면서 3사 코미디언 신입 공채가 모두 중단된 상황"이라며 "개그 무대를 통해 대중성 등이 확인된 젊은 희극인을 각사 간판 버라이어티나 리얼 예능에 활용했는데 그 젖줄이 끊겨 신인 발굴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Z세대 인기 유튜버들을 TV로 영입하는 게 세대교체의 대안으로 꼽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다. 유튜브는 소재와 방송 언어에 대한 규제의 벽이 낮지만 TV는 정반대다. 뛰어 놀던 콘텐츠 환경이 너무 달라 자칫 TV로 잘못 수혈했다가 괜히 잡음만 불거질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을 이끄는 이영자(왼쪽)와 전현무. 집단 MC 체제인 이 프로그램에도 20대 진행자는 없다. MBC 방송 캡처
그래프=김문중 기자

TV 시청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지상파 예능의 고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올 상반기 낸 '2021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TV를 필수 매체라고 생각하는 10대와 20대는 각각 0.1%와 4.5%에 불과했다. 반대로 60대와 70대는 54.3%와 83.9%로 조사됐다. TV에 충성도가 높은 중장년을 겨냥해 종합편성채널들이 트로트 관련 예능을 쏟아내는 것처럼 지상파도 앞으로 '은빛 예능'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TV와 OTT용 예능을 모두 제작하는 외주제작사 고위 관계자는 "트렌디 드라마가 편성됐던 금토 오후 시간대에 통속극인 '펜트하우스' 시리즈가 방송되는 등 지상파 드라마 편성도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TV로 예능을 보는 주시청자가 중장년이기 때문에 출연자 세대교체보다 중장년에 어필할 수 있는 예능 기획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위축되는 세대 문화 교류

이렇게 지상파 예능이 고령화하다 보니 청춘 스타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있다. 13일 입대한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진은 지난달 신곡 '디 애스트로넛'을 낸 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할명수' '취중진담' 등 유튜브 예능 세 곳을 돌았다. 지상파 예능에 출연한 건 '런닝맨' 단 한 곳뿐이었다. 청년 유입이 줄면서 지상파 예능도 지방도시처럼 '청년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화 다양성의 텃밭이 돼야 할 지상파 예능이 고령화될수록 세대 간 문화적 교류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다매체 시대에 지상파가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 요소는 다양성과 보편성 확보"라며 "나이, 직업, 성적 지향이 다양한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기획으로 청년 세대를 불러 모을 수 있는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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