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장을 마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북촌 홍반장’ 박현정 관장[인터뷰]
평일에는 탁구 강습으로 ‘핑퐁’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주말이면 전시장·공연장으로 변신하는 이색 공간이 있다. 비가 오면 동네 주민들이 우산을 빌리러 오고, 하굣길 아이들이 물 마시러 와서는 그림을 그리다 가는 곳. 박현정 관장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자리한 북촌탁구 이야기다.
지난 15일 북촌탁구에서 만난 박 관장은 “사람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작당하는 걸 좋아해 탁구장에 문화공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북촌탁구는 2018년 1월 문을 연 이래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이어오며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평일에는 주로 전문 탁구 코치가 상주하며 탁구를 가르치지만 강습이 없는 시간에는 초등학생뿐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오카리나와 기타 강습을 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1인 1악기’ 배우길 장려하며 ‘반려악기’ 전도사를 자청하는 박 관장은 매년 주민 참여 프로그램 ‘아무연주대잔치’를 개최해왔다. 악기 연주가 가능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종로구청과 진행하는 민간협치사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10월에는 종로구 원서공원에서 첫 야외무대 공연도 펼쳤다. 공연이 끝난 뒤 2부에서는 프로 음악가인 동물원의 특별 무대가 이어졌다. 박 관장은 “고 김광석 형님의 팬클럽인 ‘둥근소리’의 소리지기(대표)를 맡고 있다 보니 친분이 있어 부탁을 드렸고 흔쾌히 동참해주셨다”며 “주민 모두에게 특별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공연을 마련하다 보니 처음에는 무관심했던 분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박 관장은 북촌 알리기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지난해 직접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북촌홍반장의동네산책 #1’ 음원을 선보였다. 북촌 산책길의 소소하지만 정겨운 풍경을 담았다. 지난 9월에는 주민들이 직접 출연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직접 소개하는 ‘내 서랍 속 북촌’이란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또 마을 작가들과 협업해 계동길 지도를 만들어 방문객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협업사업을 통해 동네 어르신 9명의 사진을 모아 ‘당신의 빛나는 라떼’전을 열었다.
도심 속 시골마을 같은 북촌이 좋아 3년 전 북촌으로 이사한 박 관장은 주민들에게 ‘북촌 홍반장’으로 통한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을 봐주고 도움을 요청하는 어르신들 전화에는 한달음에 달려간다. 최근 2년간 어르신들의 코로나19 치료 약을 대신 사다 주기도 했다. 북촌탁구를 방문하는 19세 이하 청소년과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로 음료수를 제공하고, 여름철에는 무더위에 지친 주민들의 피서지로도 인기다.
박 관장은 북촌탁구를 열기 전 서울 청량리에서 100평 규모의 탁구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암 투병 끝에 별세하면서 상실감과 슬픔에 몸까지 아팠던 박 관장은 탁구장을 정리했다. 그는 “쉬던 중 지인의 초대로 서점에서 주최한 공연을 보고 북촌탁구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며 “비슷한 시기에 서울시 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50+인생학교에 입학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심적으로도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내년에는 동네 잡지를 창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시청자미디어센터의 ‘방방곡곡 마을미디어 교육지원사업’에 선정돼 주민 12명이 무료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며 “이들과 함께 북촌의 시시콜콜한 소식을 취재해 내년 1월 중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신년회를 겸해 ‘뒹굴뒹굴 어린이 영화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맡겨놓고 2시간만이라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좋고 동네를 위한 활동이 즐겁다는 박 관장은 3년 안에 북촌 생활문화센터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주민들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주민들이 동네를 더 사랑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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