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이어 K뮤지컬을 브로드웨이에 쏘다
‘옥장판 사건’부터 K뮤지컬 미국 진출까지 이슈 다양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19년까지 뮤지컬은 매해 최대 매출을 갈아치우며 순항했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진입했다. 팬데믹 시작과 함께 2020년 2월부터 공연 중이던 작품들이 서둘러 막을 내렸고, 많은 뮤지컬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봄 시즌에 60%가 넘는 작품이 막을 올리지도 못하고 개막을 무기한 연기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런 환경에서 공연을 강행한 프로덕션들은 방역패스과 좌석 띄어앉기를 유지하며 살얼음판을 걸어야만 했다. 모든 극장 건물은 밤 10시 이전에 공연을 마치고 비워야 했다. 공연 기간 중에 배우나 스태프 중에서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군집(群集)이 기본인 환경에서 모두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2주간 연습 혹은 공연까지 취소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버텼다.
올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 4000억원 돌파 전망
코로나 최초 발생 시점에서 만 2년이 된 올해 1월에야 방역패스가 해제됐다. 밤 10시 이전에 공연을 마쳐야 하는 규정도 사라지고 좌석 띄어앉기도 자율화되면서 비로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흐른 2022년 말. 다행히 뮤지컬은 다른 어떤 업계보다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으로 돌아온 올 한 해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과 관심을 끈 이슈들은 무엇이었을까.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 상반기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1826억원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21년 두 번의 상반기를 합한 1763억원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 실적을 웃도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기록적인 상승세에 더해 대형 화제작이 즐비한 연말 성적까지 포함하는 하반기까지 결산한다면 올 한 해 뮤지컬 총 판매액은 4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 한 해 매출 순위 상위권을 기록한 공연들은 주로 인지도가 높은 재공연 프로덕션들이다. 그 목록을 살펴보면 지난해 하반기에 개막해 연초까지 이어진 《레베카》 《지킬 앤 하이드》를 필두로 《데스노트》 《라이온 킹 투어》 《아이다》 《마타하리》 《킹키부츠》 《웃는 남자》 《엘리자벳》 《브로드웨이 42번가》 《마틸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재공연이지만 《데스노트》와 《마타하리》는 좀 더 한국 시장에 맞게 작품적으로 큰 폭의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초연 라이선스 작품 중에서는 《하데스타운》과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꼽힌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마지막 주간에는 초연이자 최고 화제작 《물랑루즈》가 개막한다.
뮤지컬 붐을 이끄는 대극장 해외 라이선스 공연들 사이에서 한국인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순수한 창작 뮤지컬, 이른바 '대극장 K뮤지컬'들도 여럿 선전한 한 해였다. 올해 1000석 이상 극장에서 《프랑켄슈타인》(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팬레터》 《아몬드》 《사랑의 불시착》(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서편제》(광림아트센터), 《광주》 《잃어버린 얼굴 1895》(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블루헬멧: 메이사의 노래》 《모래시계》(디큐브아트센터) 등이 눈길을 끌었고 《영웅》(LG아트센터)은 연말 주간에 영화와 함께 동시에 개막될 예정이다.
뮤지컬계에 좋은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6월13일 이른바 '옥장판 사건'이라고 통용되는 메가톤급 이슈가 공연계를 넘어 국내 모든 매스컴의 사회면을 3주 가까이 도배한 일이 있었다. 논란의 주인공은 옥주현이다. 1998년 걸그룹 '핑클'로 데뷔해 스타가 됐고, 2005년 뮤지컬 《아이다》의 주인공을 맡은 이래로 현재까지 17년간 최고의 티켓파워를 보인 여배우다. 하지만 한때 절친으로 알려졌던 배우 김호영이 《엘리자벳》 공연에 그의 '인맥 캐스팅'을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SNS 글을 올리며 삽시간에 스캔들로 비화했다. 그와 공연했던 동료 배우나 스태프들이 '갑질'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다는 글이 광범위하게 공유됐다. 결국 옥주현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르고 있다.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8월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가 티켓 가격 정보를 공개하자 일부 관객이 최고가인 VIP 티켓 가격이 16만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9월에 발표한 《물랑루즈》는 최고가가 18만원, 10월에 발표한 《베토벤》은 17만원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VIP 가격은 12만원부터 서서히 상승하다가 팬데믹을 전후해 15만원을 기록했다.
사실 올 한 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을 고려하면 16만~18만원은 15만원 대비 7~20% 정도 오른 것이다. 제작사들도 코로나 시기에 엄청난 적자를 봤고, 그사이에 인건비와 장비 대여비 등 제작 비용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팬데믹으로 아예 1년 반 동안 폐쇄됐던 뉴욕 극장가는 올봄부터 본격적으로 정상화했지만 현재 인기 있는 작품의 평균 가격은 우리 돈으로 30만원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뉴욕이나 런던에서 뮤지컬 관람은 고가의 명품 소비 행태에 가까운 것으로 기존 애호가들의 불안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K팝 다룬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소개되기도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2022년 말 결산 차트에 따르면 방탄소년단(BTS)은 다수의 분야에서 상위권에 등극했다.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등의 활동으로 K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면서 그 인기와 영향력이 뮤지컬에까지 전파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특히 2022년은 그동안 국내 아이돌 아티스트들이 뮤지컬에 출연하거나 해외투어를 나가는 경우가 아닌 K팝을 둘러싼 이야기 자체를 뮤지컬 콘텐츠로 만드는 시도가 브로드웨이에서 첫 결실을 맺은 한 해였다. 뮤지컬 《케이팝(KPOP)》은 지난 11월 브로드웨이 서클인더스퀘어 극장에서 프리뷰를 시작해 정식 개막을 했고 12월11일까지 한 달 정도 공연을 가졌다. 이 작품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창작에 참여한 뮤지컬로 K팝 스타가 되기 위해 기획사에서 많은 연습생이 훈련을 거쳐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고 성공을 위해 애쓰는 과정을 픽션으로 담았다.
내용적으로는 K팝을 이끄는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만들어지는 산업화된 한국의 아이돌 산업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특수한 문화와 정서를 소개하면서 음악적으로는 자로 잰 듯한 칼군무와 댄스곡이 특징인 K팝을 뮤지컬 음악으로 치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실제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인 f(x) 출신 루나를 비롯해 많은 한국 배우와 실력은 있지만 출연 기회가 적었던 아시아계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에 데뷔하는 성과도 얻었다. 다가오는 2023년에도 더 많은 뮤지컬이 국경을 초월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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