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 45년 숙원… 의료계 갈등·與野 정쟁에 또 입법 표류 [심층기획-올해도 국회 문턱 못 넘은 ‘간호법’]

배민영 2022. 12. 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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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보완… 간호사 인력 계획 명문화
구인난 해결·처우 개선… 국민 70% 찬성
美·英·獨·日 등 선진국들 유사법안 운용
의사단체 “간호사 불법 독립 개업 우려”
간호조무사단체선 “일자리 줄 것” 반대
‘단골’ 대선 공약에도 발의·폐기만 반복
올해 與野 발의 법안 3건 상임위 계류 중
與 “조율 없이 야당안 밀어붙여” 불쾌감
민주당 입법 의지 크지만 통과 미지수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릴레이 시위를 약 1년째 벌이고 있지만, 올해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엔 입법이 될 줄로만 알았다. 올해 초 주요 대선 주자들이 한목소리로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간호 인력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근로환경이 알려지자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도 상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간호법은 여야 정쟁 속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새해를 맞을 전망이다. 간호협회는 1977년부터 45년째 입법 요구를 하고 있지만, 여야가 총선을 한 해 앞둔 내년에 간호법 제정에 적극성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발의돼도 빛 못 보고 폐기 반복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 체계가 간호환경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됐다. 인구 고령화로 간호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간호사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인력수급 계획 및 교육, 처우개선 관련 규정을 담은 종합적인 간호정책이 필요하지만, 의료법이 이를 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 등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수요 집회에서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은 의료 환경이 낙후했던 당시 상황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을 넘어 학교, 기업, 요양시설 등으로 간호사의 업무영역이 확대된 만큼 기존 의료법을 보완할 수 있는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데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결과 16대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나란히 간호법 입법을 공약한 데 이어 2005년 4월 김선미 의원이 처음으로 ‘간호사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의료계 내 직역 갈등의 불씨로 작용한 김 의원 법안은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 수순을 밟았다. 2005년 8월(박찬숙 의원), 2019년 4월(김세연·김상희 의원)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같은 이유로 줄줄이 폐기됐다. 지난해 여야 의원들(김민석·서정숙·최연숙 의원)이 재차 3건을 발의했지만, 각종 현안에 밀려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박인숙 서울간호사회장은 통화에서 “간호사들이 너무 힘이 없고, 의사협회가 힘이 세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했다. 박 회장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힘이란 것은 결국 경제력과도 관련되는 것 아닐까 싶다”며 “의사, 약사, 한의사 등은 고용주이고 솔직히 간호사는 피고용인이다. 어느 단체가 더 힘이 세겠는가”라고 했다.
대한의사·대한간호조무사·대한임상병리사협회를 비롯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저지를 위한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총궐기대회'에서 간호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약사 출신으로 국민의힘 측 간호법을 대표 발의한 서정숙 의원은 “의사와 간호사는 다른 직역보다도 상당히 밀착된 면이 있다”며 “일선 의료현장에서 의사 없는 간호사, 간호사 없는 의사가 있을 수 없는 만큼 양 단체가 합의점을 찾아 법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아쉽다”고 했다.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여론은 우호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지난 2월 7∼1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찬성 여론(70.2%)이 반대(9.3%)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간호 인력의 지속적 확보와 감염병 대응 등을 위해 간호사 등 인력에 관한 법률을 두고 있다.

◆입법 과정서 여야 조율도 ‘삐걱’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인 간호법은 국민의힘 서정숙·최연숙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3건이다. 이들 법안은 △간호사·전문간호사 등의 자격요건 명문화 △간호사에 대한 교육훈련 실시 △인권침해 예방 △간호 인력 수급계획 수립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세우도록 명문화하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의사단체는 간호사 직역이 의사의 관리·감독 체제를 벗어나 단독적인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간호사가 개업의처럼 독자적으로 클리닉을 개설하는 일이 현실화해 불법 의료 행위가 성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조무사 단체 또한 간호사의 역할 확대로 자신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김민석 의원 법안을 밀어붙이기식으로 복지위에서 처리한 뒤 법제사법위로 밀어 올린 것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러잖아도 직역 간 갈등이 첨예한 사안인데, 조율도 거치지 않고 김 의원 법안만 통과시키겠다고 의사봉 세 번 두드리면 되는가”라고 말했다.

국회법상 법사위에 계류된 지 60일이 지난 법안은 소관 상임위로 돌려보내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와 관계를 고려해야 하다 보니 더는 법안을 밀어붙이기 어렵다고 보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 소속 정춘숙 복지위원장이 자신의 임기 내 간호법 처리 의지를 내비치고 있고, 지도부의 입법 의지가 강한 만큼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입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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