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2호기 내어달라"… 주중대사의 수상한 베이징 부임[문지방]

김광수 2022. 12. 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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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주중대사 7월 베이징 부임 때
외교부, '공군 2호기' 운항 이례적 요청
"전례 없는 일"...특혜 논란까지 불거져
대통령·총리의 단거리 출장용 항공기
전용기 투입 무산...외교부·대사관 함구
톈진 경유해 베이징 가려다 10일 격리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7월 정재호 주중대사가 부임했습니다. 한중수교 30주년을 한 달 앞둔 시점입니다. 3년간 재임한 전임 장하성 대사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임에도 존재감이 기대에 못 미쳤던 만큼 정 대사를 향한 외교가의 관심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계의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인 데다 윤석열 대통령과 충암고 동기라는 정치적 의미까지 더해져 한중관계 개선을 열망하는 세간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정 대사는 외교 현안이 아닌 베이징 임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석연찮은 일로 입방아에 오릅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정 대사 부임을 앞두고 외교부에서 돌연 군 당국에 정부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내어달라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文, 공군 2호기 타고 백두산 방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삼지연 공항에서 만나는 모습 뒤로 공군 2호기가 보이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 내외는 평양 순안공항에 공군 1호기를 대기시켜 놓고 활주로 길이가 짧은 삼지연 공항은 공군 2호기를 타고 갔다. 연합뉴스

공군 2호기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단거리 출장을 가거나, 울산처럼 활주로 길이가 짧은 공항을 이용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종입니다. ‘코드 원’으로 불리는 장거리항공기 공군 1호기의 국내용 버전인 셈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을 찾아 남북정상회담을 했는데, 평양에서 백두산을 방문할 때도 공군 2호기를 탔습니다. 삼지연 공항의 활주로 크기가 넉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사가 해당국가에 부임할 때 공군 2호기를 타고 가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국방부와 군 당국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심지어 ‘정 대사가 윤 대통령 친구라서 그런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른 주요국 대사들과 비교해 ‘특혜’로 비치는 점도 부담이었습니다. 한반도 주변 4강 국가 가운데 조태용 주미대사(6월), 윤덕민 주일대사(7월)가 정 대사와 비슷한 시기에 부임했지만 모두 민간 항공편을 이용했으니까요. 윤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한일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일본보다 중국을 유별나게 예우하는 것으로 상대국이 인식한다면 외교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서훈·정의용은 공군 3호기 타고 中 방문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12월 2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과의 협의를 위해 톈진에 도착해 숙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그는 공군 3호기를 타고 왔다. 톈진=베이징특파원단 연합뉴스

물론 앞서 중국을 찾은 정부 고위인사가 전용기를 이용한 전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정의용 전 외교장관은 지난해 4월 공군 3호기를 타고 샤먼으로 건너가 왕이 외교부장과 만났습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12월 톈진에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회담할 때도 같은 항공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코로나가 한창이고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강조하는 통에 한중 양국을 연결하는 항공편이 대부분 끊겨 드문드문 운행할 때입니다. 민항기를 타고 갈 경우 중국에서 돌아올 때 며칠씩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 만큼 불편이 컸습니다. 그래서 특수한 상황에 맞게 특별조치로 정부 전용기를 투입한 것입니다. 참고로 공군 1ㆍ2호기는 여객기인 반면 3호기는 수송기를 개조한 기종입니다. 대사보다 정부 직급이 높은 청와대 안보실장과 외교장관도 공군 2호기가 아닌 3호기를 이용했는데, 대사에게 2호기를 내어달라고 했으니 뒷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외교부·주중한국대사관 모두 말 아껴

정재호 주중대사가 10월 26일 베이징 대사관저에서 열린 개천절 및 국군의 날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그러면 외교부는 왜 정 대사 부임과정에서 정부 전용기까지 들먹이며 무리수를 두려 했던 것일까요. 한국 국적 민항기를 타고 서울에서 직접 베이징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일주일에 한 번 오가는 중국 항공사 항공편 외에 서울과 베이징을 잇는 노선이 모두 끊겼으니까요. 대신 톈진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가서 차로 2시간 이동해 베이징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전용기를 타고 베이징에 바로 갈 때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이죠.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외교부와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에 문의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사가 전용기를 타고 부임하는) 그런 상황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아는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주중대사관 측은 전용기 요청 사실 여부와 배경을 묻는 질문에 아예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공군 2호기 투입 요청을 받은 사실은 있는데, 이를 누가 요청하고 주도했는지는 서로 발뺌하는 모양새입니다.


정 대사, 톈진 경유 베이징 가려다 10일 격리

중국 베이징의 코로나19 검사장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시민들의 입에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결국 정 대사는 톈진을 통해 중국에 입국합니다. 이때 엉뚱한 일이 터지는데요. 비행기 승객 가운데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정 대사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베이징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톈진에서 열흘간 격리하며 발이 묶입니다. 통상 대사는 다른 승객과 달리 베이징 대사 관저로 먼저 이동해 입국 후 격리절차를 거치면 되는데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한 셈입니다.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는데도 중국 당국은 요지부동이었죠. 이를 놓고 “외교적 결례”, “중국의 신임 대사 길들이기” 등 온갖 억측이 분분할 정도였습니다.

코로나에 극도로 민감한 중국 때문에 양국 간 왕래가 여의치 않은 시기입니다. 장하성 전 주중대사가 지난해 7월 건강검진을 받으러 일시 귀국했는데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터라 한국에서 2주, 중국에서 3주 격리하는 바람에 총 5주간 대사관을 비웠습니다. 이번 전용기 해프닝 또한 석연치 않습니다. 정 대사 부임과정에서 중국의 엄격한 코로나 방역을 의식해 혹을 떼려다 되레 붙인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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