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M본부] 베테랑 일등항해사는 왜 1미터 난간 바깥으로 추락했나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무궁화 10호. 5백톤급 어업지도선으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고 우리 어선의 금어기 조업 등을 단속합니다. 기동성과 작전 수행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해군 함정과 달리, 무궁화 10호는 1미터 높이의 고정형 안전 난간을 설치해두고 있습니다. 그물형 펜스 또는 하단 물빠짐 통로만 뚫린 형태의 철판으로 갑판을 둘렀습니다. 선원들의 추락을 막기 위해섭니다.
왜 2년 전 40대 베테랑 선원, 고 이대준씨가 이 난간 너머로 사라져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는가. 이 '미스터리'를 두고 검찰과 감사원, 전 정부 관계자와 현 여권 인사들까지 지금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이 씨의 행적과 함께 각각의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안전 난간 설치된 무궁화 10호>
실종 나흘 전인 2020년 9월 17일 오전 11시, 이대준 씨는 무궁화호 10호에 올라탑니다. 무궁화 13호에서 근무하던 중 정기 인사에 따라 일등 항해사로 발령 받고 배를 옮긴 것입니다. 가을 꽃게잡이철이 한창일 때라, 무궁화 10호는 이 씨 등 16명 승조원을 태우고 연평해역 인근에서 작전 중이었습니다. 우리 어선들이 꽃게를 쫓다가 NLL 넘어 북한 해역으로 가지 않는지, 중국 어선이 우리 해역을 침범하진 않는지를 집중 단속하고 있었습니다. 9월 25일까지 임무를 수행할 예정으로, 항만 시설이 작은 연평도에 기항하지 않고 파도와 바람이 약한 소연평도 남쪽 바다에 정박하곤 했습니다.
이 씨가 실종되기 전날인 9월 20일 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밤이 되자 무궁화 10호는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1.2킬로미터 지점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습니다. 승조원들은 야간엔 2인 1조로 조타실에서 당직을 섰습니다. 이 씨는 밤 11시 35분에 당직 사관으로, 후배 이 모씨와 함께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근무복 외에 구명조끼는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이날 바다는 매우 잔잔했습니다. 기상청은 파도 높이 0.1미터, 바람 초속 5미터로 측정했습니다.
<야간 당직 중 바다로 사라진 사관>
이 씨 근무조의 예정된 당직 근무는 4시간, 이튿날인 21일 새벽 3시 35분까지였지만 근무 시간을 절반 남긴 1시 35분에 이 씨는 조타실을 비웠습니다. 후배 선원에겐 "할일이 있다. 일하고 먼저 쉴테니 근무 일지 마무리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수사 결과, 실제 이씨는 2분 뒤인 1시 37분쯤 서무실 컴퓨터에 접속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14분 뒤인 1시 51분 이 씨의 휴대전화가 꺼졌습니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이 씨는 다음날인 22일 오후 3시 30분쯤, 무궁화 10호로부터 27킬로미터나 떨어진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인근 바다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소속 고기잡이 배에 발견됩니다. 처음 구조 정황을 보이던 북측은 이후 군부대를 출동시켜 돌연 이 씨를 사격해 사살했습니다.
<세 가지 가능성 : 실족, 자살, 자진 월북 기도>
실종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21일, 곧바로 갑판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했을 것이란 실족론, 아니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란 자살론, 그리고 작은 가능성이지만 월북을 기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자발성과 사회적 비난 가능성을 따지자면, 실족이 가장 낮습니다. 극단 선택은 자발성이 있지만 사회적 비난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습니다. 마지막 자진 월북일 경우, 자발성을 전제하는 것으로 물론이고 현행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사안으로 비난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NLL 월선을 감시해야할 공무원의 지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그가 근무중 이탈하는 것을 방조했다는 점에서 동료 선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사건 초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졌던 건 세 가지 가능성 중 극단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해경 조사에서, 이 씨를 아는 동료 선원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과 유가족이 공개한 진술조서를 보면 동료 선원은 "최근 이혼하고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고 자살했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방수복을 입지 않고 그대로 들어갔다는 것은 월북이 아닌 자살"이라는 진술도 있었습니다. 극단 선택 동기로는 '게임과 관련된 빚', '금전 문제', '이혼' 등이 거론됐습니다.
<꽃게대금도 '오링', 월북 동기일까 자살 동기일까>
해경 수사에서, 실제 이씨가 온라인 도박 '바카라'에서 상당기간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9년 6월부터 실종 전날까지 5백90여 차례, 도박에 쓴 돈은 모두 1억3천만 원에 달했습니다. 실종 직전 두 차례 꽃게 구입을 대신해주기도 했는데, 이 돈도 도박에 썼습니다.
1차로는 발령 받기전 탑승하던 무궁화 13호 동료 선원 등 4명에게 1백10만원 정도를 받아 온라인 도박을 했고, 운좋게 2백만원 넘게 땄습니다. 이 돈으로 꽃게잡이 선장에게 대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해경 수사팀은 이 씨가 억대 채무를 갚기 위해 개인회생에 들어서면서, 월급의 일부만 수령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꽃게 판매 대행도 도박 자금 마련 용도를 겸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씨는 2차 꽃게 구매 대행에선 규모를 좀 더 키웠습니다. 무궁화 13호와, 새로 옮겨탄 10호 등 동료 선원과 지인 34명으로부터 실종 전날까지 자기 계좌로 6백여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차례로 도박 배팅 자금으로 썼습니다. 마지막 도박 베팅 송금은 당직 근무에 들어서기 1시간 전인 밤 10시 28분에 배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운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베팅한 돈을 당직 전 마지막 판에서 모두 잃었다고 당시 해경측은 밝혔습니다. 꽃게 구입 대금을 납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여권 일각에서도 '극단 선택' 주장>
현 여권 일각에서도 '극단 선택'에 무게를 두는 것도 이같은 정황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씨가 작성하던 문서 파일을 지우고 극단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또 동료 선원들이 극단 선택에 무게를 둔 건, 운행하지 않고 묘박(바다에 닻을 내려 정박) 중인 배에서, '베테랑' 일등항해사가 1미터 안전 난간 밖으로 실족하는 일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궁화 10호에 특별한 충격이 가해진 정황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의도하지 않고 난간을 넘어설 일이 없었단 뜻입니다.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고참 선원은 "당직 근무 교대시 좌우현 선박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일지에 남기기도 한다"면서도 "야간에 갑자기 갑판 위에서 혼자 작업할 일은 흔치 않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다만, 당시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참 선원은 "당직 때 레이다 감시 등을 해야하기 때문에 조타실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자리를 뜨는 건 관행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숨진 이 씨 다음 당직 근무조는 이 씨의 부재에도 정상적인 근무 교대를 한 것으로 처리하면서 실종 의심 시각인 새벽 2시쯤으로부터 9시간 넘게 지난 11시 30분에서야 이 씨가 배에서 사라진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입증 책임 높은 '월북' 결론 왜 나왔나>
그렇다면 '극단 선택'이란 동료 선원들의 주장과 달리, 이 씨가 월북했다는 결론이 내려진 이유는 뭘까.
먼저, 당시 국방부와 해경은 한미 연합군의 정보 자산으로 이 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졌다면, 구명조끼를 입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 이 씨가 다리는 잠기지만 몸이 떠 있을 만한 부유물에 몸을 싣고 있었다는 것도 첩보로 드러났습니다. 결정적으로는 23일, 우리 군이 이씨와 관련된 군 첩보를 추가 분석하기 위해 북한군끼리의 교신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자신의 소속, 이름, 출신을 밝히고 월북한다고 답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남서쪽으로 흐르던 조류를 고려하면 인위적 노력없이 표류해 북측 해역으로 가기 어렵다는 점, 당시 연평도 해역에 설치된 어구가 많아 이를 일부러 피하지 않고선 단순 표류는 가능성이 낮다는 점, 북측과 더 가까운 연평도에서 월북을 시도하면 해병대나 해군에 곧바로 포착된다는 점 등이 고려됐습니다. 도박 빚 등 개인 신변과 관련된 정황은 월북을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판단됐습니다.
<유가족 '실족' 주장..검찰도 실족에 무게>
이대준 씨의 형인 이래진 씨는 MBC와의 통화에서 "당시 연평 해역은 계절풍 등의 영향으로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물기 있는 갑판에서 충분히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이다. 고속단정 담당 팀장이었던 동생이 갑판 위에 거치된 고속단정을 살피다 실족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가족은 처음부터 이대준 씨의 실족을 주장해왔습니다. 이씨가 실종 전에도 개인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며, 극단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고 봤습니다. 아내와의 이혼 역시 빚쟁이를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속 공무원이 꽃게 판매를 대행한 것에 대해선 "실종되기 불과 몇시간 전까지 지역 어민에게 도움을 주고자 판매를 중개한 것"이라며 "이익보다 어민의 고충을 나누고자 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조류 흐름이 북쪽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건 그렇기 때문에 월북일 수 없다는 증거로 해석됐습니다. 같은 근거를 두고도 다른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왜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을까.
앞서 감사원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 씨가 미리 구명조끼를 준비했다는 '월북론'을 반박했습니다. 국방부 자료를 재검토하니, 이 씨가 입고 있던 구명 조끼에 한자가 쓰여 있었고, 팔에 붕대가 감겨 있던 정황이 확인됐다는 겁니다. 조류 흐름과 주변에 중국 어선이 있었던 점을 같이 고려하면, 다른 선박에 탔다 다시 바다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분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바다에 빠진 이 씨를 건진 중국 어선이 단속 공무원인 걸 확인하자, 구명조끼를 입히고 팔에 붕대를 감아준 채 다시 바다에 빠뜨렸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증빙하기 어려운 추론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내부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구명조끼, 월북 첩보 탄핵 근거는?>
지난 7월 유가족과 국정원의 고발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과 해경을 수사해온 검찰 역시 자진 실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검찰은 어업지도선을 타고 현장 검증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서훈 전 안보실장에 대한 구속 영장 실질심사에서 당시 촬영한 영상을 제시하며 현지의 물살이 빠른 만큼 이씨가 순식간에 휩쓸려 갔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중국 어선 탑승 가능성을 제기한 감사원 지적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평가하면서도, "결국 이 씨가 바다로 이탈될 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느냐가 핵심"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한자 구명조끼가 무궁화 10호에 비치돼 있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이 씨가 처음부터 입고 바다로 뛰어든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또 검찰은 월북 정황 역시 이씨의 직접적인 육성이 담긴 것이 아닌 북한군끼리의 보고 과정에 언급됐을 뿐이라며 월북으로 성급히 결론낼 만큼 확실한 증거는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최종 판단이 실족인지, 극단 선택인지에 대해선 수사 마무리 단계인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기자들 질문엔 "지금 단계에선 말씀드리기 어렵다"(지난 15일), "최종 수사 결과 나올 때쯤 말하겠다"(지난 1일)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 씨가 입수하는 모습이 잡힌 CCTV가 있지 않는 이상, 어느 시나리오를 제시하더라도 빈틈이 발견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빌미를 주지 않고 법정에서 전 정부의 '월북 결론'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집중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기 전이지만, 실족과 자살, 월북의 세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이번 정부도 나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사실상 실족으로 보고 각종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2일, 이씨의 피살 2년만에 해양수산부는 해수부장으로 이씨의 영결식을 치렀습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대통령실 지시 없이 가족 요청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6일 이씨가 당직 근무 중 숨진 점을 들어, 순직 공무원으로 최종 인정했습니다.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등록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월북 몰이' VS '정책 판단'..형사처벌되나>
반면, 여전히 전 정부 인사들과 서훈 전 실장 변호인단 등은 당시 월북으로 판단한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캄캄한 바다에서, 검찰 주장대로 빠른 유속에 휩쓸린 이씨가, 구명조끼와 함께 성인이 몸을 실을 만한 부유물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합니다. 또 CCTV와 같은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거나 당사자의 진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첩보를 두고 정책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월북이 아니라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지 검찰이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씨의 피살과 관련된 군 첩보의 신빙성은 인정하면서, 월북 정황이 담긴 첩보는 낮게 평가하는 점도 문제 삼습니다. 첩보에 대한 검찰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더라도 이씨가 바다에 빠진 경위를 두고는 법정에서도 치열한 진실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세웅 기자(salt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437231_35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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