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샤가 내 제자입니다” 크로아티아 3위에 환호한 노상래 감독
밤잠을 설쳤지만 지친 기색은커녕 기쁨만 가득했다. 옛 제자인 미슬라브 오르시치(30·자그레브)가 조국 크로아티아에 2022 카타르 월드컵 동메달을 안기는 결승골을 터뜨렸으니 그럴 법 했다.
축구 선수로 기량이 농익은 서른 살에 ‘꿈의 무대’를 평정한 오르시치, 사실 국내에선 ‘오르샤’라는 등록명으로 친숙한 선수다. 7년 전 K리그1 전남 드래곤즈에서 그를 가르쳤던 노상래 감독(52·현 울산 현대 유소년 디렉터)은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내가 가르친 선수가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3위를 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웃었다.
오르시치는 이날 카타르 도하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모로코와 3~4위전에 선발 출전해 1-1로 맞선 전반 42분 원더골을 터뜨렸다. 팀 동료인 마르코 리바야(스플리트)가 중앙에서 넘겨준 공을 페널티지역 왼쪽 측면에서 잡은 그가 오른발로 감아찬 슛이 믿기지 않는 각도로 휘면서 골망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 최고 스타인 모로코 골키퍼 야신 부누(세비야)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크로아티아가 2018년 러시아 대회 준우승에 이어 3위라는 호성적으로 이번 대회를 마치는 순간이었다.
노 감독은 오르시치의 결승골에서 옛 추억을 떠올렸다. “전남 수석코치를 맡았던 2013년 크로아티아로 날아갔을 때 오르시치에 반했던 것도 이런 슈팅이었다”고 웃었다.
노 감독이 오르시치의 활약을 더욱 반기는 것은 K리그에서 잠재력을 터뜨린 사례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노 감독은 “처음 오르시치를 데려오려고 했을 땐 미숙한 부분도 있었다. 내가 데려오기도 전에 이탈리아 2부(스페치아 칼초)로 갔던 2013년이나 다시 크로아티아 1부(리예카)로 넘어간 2014년까지 자리를 못 잡던 선수를 2015년 감독이 되자마자 이적료 없는 무상 임대로 데려왔는데, 선수가 매일 매일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르시치는 전남 이적 첫해인 2015년 33경기를 뛰면서 9골 7도움으로 맹활약했다. 이후 국내 활약을 바탕으로 2018년 5월 크로아티아 디나모 자그레브로 돌아간 그는 2019년 첫 국가대표로도 발탁될 정도로 발전을 확인했다. 극적으로 카타르 월드컵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조커’로 캐나다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4-1 승리에 쐐기를 박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더니 브라질과 8강전에선 0-1로 끌려가던 연장 12분 브루노 페트코비치(자그레브)의 1-1 동점골을 도와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노 감독은 “솔직히 브라질전은 골 아니면 도움 하나는 해낼 것 같았다. 교체 투입 3분 만에 동점골을 돕고,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로 성공하다니 K리그의 힘”이라고 말했다.
대기만성 그 자체인 오르시치는 이름값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게 만든다. 전남 입단 초기 부르기 힘든 이름을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육룡이 나르샤)에 빗대 오르샤로 바꿔봤는데, 그 이름처럼 오르막만 있다. 오르시치는 이번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5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 월드컵 활약과 맞물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이적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노 감독은 “이미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로 공인받은 것이 아니냐”고 되물은 뒤 “계속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챔피언스리그 해트트릭 직후 연락했을 땐 유니폼을 준다길래 거절했는데, 월드컵 유니폼은 조금 탐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노 감독은 오르시치의 활약을 바라보며 한 가지 꿈을 갖게 됐다. 울산 현대의 유소년 디렉터인 그가 미래 오르시치보다 더 나은 활약을 펼칠 샛별을 키워내는 것이다. 노 감독은 “오르시치가 크로아티아에 월드컵 메달을 안긴 것처럼, 한국의 4강 신화를 재현할 우리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 선수를 내가 키운다면 더 할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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