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어린이들이 요구해 바꿨다

서혜미 2022. 12. 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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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5시20분,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초등돌봄시설 송파키움센터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센터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센터 앞 사거리 보행자 신호등에 불빛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센터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을 산책을 다니다 동네 신호등 지도를 그린 어린이들은 의문을 품었다.

신호등이 켜진 지 이틀이 지난 16일, 센터에서 만난 어린이 8명은 신호등이 생긴 뒤 든 생각을 묻자 제각각 대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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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가락본동 앞 무신호 횡단보도
어린이들이 민원넣어 2년만에 ‘해결’
“신호등 생기니 마음이 편해져요”
서울 송파구 우리동네키움센터 송파5호점 어린이들과 구선영 센터장이 16일 오후 센터 들머리에서 구청과 경찰서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들어왔다, 들어왔다!”

“오오, 우와악!”

지난 14일 오후 5시20분,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초등돌봄시설 송파키움센터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센터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센터 앞 사거리 보행자 신호등에 불빛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등을 설치한 주인공은 바로 이 어린이들이었다.

송파가락시장이 인근에 있는 가락본동 일대는 초·중·고교와 주택가·학원가가 함께 있다. 가락본동 키움센터 앞 사거리는 2차선 도로에 화물차가 수시로 지나다닌다. 그러나 보행자 신호등이 없어 평상시에도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에 가려 길을 건너려는 사람과 차량 운전자가 서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2020년 5월 개원한 이 센터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차량이 뜸할 때까지 5분가량 기다리거나, 차를 피해 급히 건너려다 넘어지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센터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을 산책을 다니다 동네 신호등 지도를 그린 어린이들은 의문을 품었다. 이런 곳에 왜 신호등이 없을까? “그럼 직접 건의해볼까?”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불편하고 위험했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고, 휴대전화로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을 찍었다. 왜 신호등이 설치돼야 하는지 이유도 써봤다. 구선영 센터장은 아이들이 만든 자료와 의견을 모아 같은달 송파구청 누리집에 생활불편 민원 글을 올렸다. 어린이들은 센터에 새로 온 저학년 학생을 위해 신호등 설치의 필요성을 알리는 인형극을 열기도 했고,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서명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임예원(12)양은 “키가 큰 저도 횡단보도를 잘 못 건넜는데 저학년 아이들은 키가 작아서 어떻게 건널지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송파구청, 송파경찰서에 신호등 설치 민원 넣었던 서울 송파구 우리동네키움센터 송파5호점 어린이들과 선생님이 16일 오후 설치된 신호등 인근에서 구청과 경찰서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민원을 제기한 것부터 신호등이 설치되기까지는 약 1년10개월 걸렸다. 송파경찰서는 지난해 6월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를 열어 신호기 설치 안건을 통과시켰다. 올해 서울시 예산에도 공사비가 반영되는 등 첫 단추는 끼웠지만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선 신호등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선·통신선을 땅속에 묻는 공사가 먼저 진행돼야 했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설치되길 기다리던 배선재(11)양은 “어떤 애는 신호등이 무거워서 못 들고 오는 거 아니냐고 했고, 저는 어른들에게 신호등 설치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신호등 설치를 마친 뒤, 통신 부품이 수급될 때까지 기다린 끝에 결국 이달 14일 신호등이 켜질 수 있었다.

신호등이 켜진 지 이틀이 지난 16일, 센터에서 만난 어린이 8명은 신호등이 생긴 뒤 든 생각을 묻자 제각각 대답하기 시작했다. “(신호등 불빛) 되게 예뻐서 좋아요”, “신호등이 생기니까 마음이 편해져요.” 그 중 한 어린이는 “그런데 (신호등이 생겨도) 신호위반이 있어요”라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신호등이 설치된 뒤 어린이들은 송파경찰서와 송파구청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했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 혼자 학교에 보내면서 항상 교통사고에 가슴 졸이며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며 “신호등 설치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외가·친가 친척 모두 ‘다행이다’라며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다”고 손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관련 업무를 맡았던 이현우 송파경찰서 교통과 경장은 “저는 업무를 한 것뿐”이라면서도 “결과물을 두고 아이들이 좋아하니 필요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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