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청담동 술자리했다 치자, 탄핵 사유이거나 불법인가

금태섭 前 국회의원 2022. 12. 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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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의 IN & OUT]

● 심야 술자리 의혹에 코웃음 치는 이유
● 지금은 저강도 계엄령 상태라고?
● 김의겸 ‘폭로’ 후 민주당 기이한 반응 쏟아내
● 친일 기득권 세력이 대한민국 움직인다는 망상
● 음모론 버려야 극단론에서 빠져나와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터뜨린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 논란을 지켜보면서 의아한 것이 하나 있다. 일부 정치인이 그 사건을 대단히 중대한 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대통령이나 법무무 장관이 퇴진을 고려해야 할 만큼의 사태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조계나 정치권의 사정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김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대통령, 법무부 장관, 전 자유총연맹 총재권한대행,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0여 명이 밤늦게 청담동에 있는 술집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의혹의 주요 내용이다.

무엇보다 같은 로펌 변호사가 한꺼번에 30명씩 몰려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연말 같은 때 자기들끼리 하는 의례적 단체 회식이나 로펌 창립기념일 같은 행사라면 몰라도 외부 인사와 만나면서 수십 명이 같이 나가는 경우는 생각하기 힘들다. 로펌도 일종의 기업이기에 만나는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는데 3명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소속 변호사 서른 명이 참석하는 것은 업계의 관례나 예의에도 어긋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면 당연히 대표 변호사에게도 미리 보고가 됐을 텐데 균형에 맞지 않게 대규모 인원을 보냈을 리가 없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법조계 인사들 코웃음

정치권 관행을 떠올려 보면 더 이상하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는 거의 예외 없이 중요한 자리다. 경호, 보안 등 고려되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일정이 아닌 이상 누가 참석하는지 사전에 다 정해진다. 대충 '퇴근 후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라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만약 정말로 대통령이 김앤장 측 인사들과 만날 일이 있었다면 대표 변호사를 비롯한 극소수의 인원을 초청했을 것이다.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는 술집에서 같은 로펌 소속 변호사 수십 명과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대통령 일정으로서 극히 이례적이다. 김의겸 의원이 의혹을 폭로했을 때 거의 모든 법조계 인사가 코웃음을 친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사실이 어쨌거나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의혹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사회단체 인사 그리고 수십 명의 변호사와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그 주점은 불법 영업을 하는 곳도 아니고 첼로를 연주하는 일반인도 있었다. 이른바 제보자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그 자리에서 어떤 위법행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수십 명이 밤늦게까지 놀았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로 나라를 흔들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경호 인력과 수행원을 제외한 참석자만 30명이 넘는다면 거의 동창회 수준의 규모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무슨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미거나 음험한 뒷거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 만약 정말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을 벌이려고 했다면 그렇게 모일 리가 있을까. 실제로 김의겸 의원이 '폭로'한 내용 자체도 술을 마시고, 건배를 하고, 참석자들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전혀 불법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확인하는 작업도 거치지 않고 이런 의혹을 폭로한 김 의원의 행태부터 의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심되는 내용 자체가 매우 중대하다면 증거가 다소 미흡하더라도 폭로에 나설 수 있다. 사실일 경우 예상되는 위험성이 클 뿐만 아니라 사안의 성격상 구체적인 자료를 구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 등 최고위 공직자가 뇌물을 수수하거나 불법 거래에 연루됐다는 제보를 받았을 경우 엄밀한 확인이 어렵더라도 언론이나 국회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용인된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폭로가 허용된다고 한다면 사실상 권력의 전횡에 대한 감시나 견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고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에 대해서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의겸 의원이 들고나온 의혹은 아무리 살펴봐도 불법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의원이나 민주당 측의 발언은 비장하기 짝이 없다. 의혹 제기 당사자인 김의겸 의원은 최초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얘기했다는 첼리스트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은 사실이 알려지자 윤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에게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애초 자신의 발언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국정과 관련된 중대한 제보를 받고 국정감사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 해도 저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김 의원의 말이다.

약속한 듯 기이한 발언 쏟아내

김의겸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거들고 나선 민주당 인사들 박찬대. 장경태 최고위원과 박홍근 원내대표, 김성환 정책위의장(왼쪽부터 시계방향). 동아DB
다른 민주당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청담동에서 김앤장 변호사와 술자리를 새벽까지 가졌다는 심각한 의혹이 제기됐다. 반드시 TF를 구성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녹취 내용 중에는 윤 대통령이 첼로 반주로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한동훈 장관이 윤도현 씨의 노래를 불렀다는 정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면서 한 장관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도대체 무엇이 '심각한' 의혹인지 알기가 어렵다. 민주당도 여러 차례 집권한 경험이 있는 정당이다. 대통령과 장관이 같이 식사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것이 문제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외부 인사가 함께 참석하거나 혹은 흥이 나서 노래를 몇 곡 불렀다고 해서 모임의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심각한 것일까.

민주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한층 더하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히자"라고 했다. 특검은 검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기관이기에 범죄의 의혹이 있을 때만 임명할 수 있다. 저 의혹 내용 어디에 범죄적 요소가 있는가.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제2의 국정농단에 해당될 만큼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떳떳하다면 7월 19일과 20일 사이에 어디 있었는지 동선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히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쯤 되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계기가 국정농단이다. 그때의 의혹은 아무런 공식 직위나 권한이 없는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인사, 연설을 비롯한 대통령의 직무에 관여하고 청와대 직원들을 수족처럼 부리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당연히 불법이고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장관이 업무 시간도 아닌 때에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이 어떻게 그것과 같은 성격의 일로 취급될 수가 있나.

중립을 지켜야 할 국민권익위원회도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보도자료를 통해 "(제보자에 대해) 공익 신고자 인정, 보호 요건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도대체 공무원이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이 무슨 근거에서 '신고' 대상이 되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김의겸 의원의 폭로에 부정적인 민주당 의원들마저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인 것은 맞는다는 전제에서 발언했다. 평소 합리적이고 상식에 맞는 얘기를 한다고 여기던 분이 방송에서 "만약 김의겸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탄핵 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증거도 부족하고 확인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게 어떻게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가.

특정한 세력이나 진영에 속한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기이한 발언을 쏟아낸다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시각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회부장을 지낸 기자 출신 김의겸 의원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실한 근거를 토대로 의혹을 폭로하고 민주당이나 그 주변 인사들이 TF 구성, 특검, 국정농단과 같은 용어로 맞장구를 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보 진영 일각에 퍼져 있는 '우리 사회가 소수의 기득권층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라는 위험한 음모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에 경도된 사람들의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망상에 가까운 음모론

이들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로 행세하던 사람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협력한다고 한다. 대체로 대기업, 보수언론, 검찰 등이 이 기득권층을 위해서 복무하는 기관으로 꼽힌다. 이런 음모론에 따르면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득권의 힘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심지어 민주당이 집권하는 동안에도 정부가 제대로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고 한다. 하물며 보수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논리에서 보면 김의겸 의원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변호사들이 함께 참석했다는 '술자리'의 의미를 과대 해석하고 자신의 폭로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이해가 간다.

김 의원은 제기된 의혹이 허위로 판명돼 유감을 표명한 이후 라디오에 출연해 팩트체크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자 이렇게 반박한다. "이게 평시 체제라면 좀 더 차분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평시인가. 지금은 거의 '저강도 계엄령'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때(1980)는 군인들이 계엄군이었다면 지금은 검사들이 계엄군 역할을 하고 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계엄군 사령관의 역할을 하면서 계엄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기억을 되돌리면 1980년 5·17 쿠데타 때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그냥 점잖게만, 차분하게만 싸울 수 있겠느냐."

유튜브 채널 '더탐사'에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최초로 제보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이 2022년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한동훈 법무부 장관 심야 술자리’ 의혹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저희를 믿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링 위에서 잠시 내려와 전투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친일은 청산이 되지 않아 기득권으로 이어져 지금도 선량한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죠."

대한민국이 계엄령하에 있고 선량한 국민들이 친일 기득권 세력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사회단체 인사, 대형 로펌 변호사 수십 명이 모였다는 술자리는 자신들의 음모론을 확인해 주는 확증으로 보였을 것이다. 김의겸 의원이 자신의 폭로를 계엄군에 대항하는 싸움에 비유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이 김 의원을 비호하면서 "전격적으로 교체된 국정원 기조실장도 검찰 출신이자 김앤장 출신 아닌가"라고 뜬금없는 얘기를 한 것도 결국 이 자리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기득권층과 대통령이 어떤 야합을 하는 자리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는 무장 쿠데타를 계획하던 반정부 세력 25명이 체포됐다. 2022년 다른 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쿠데타 음모가 있었다는 뉴스에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어 했지만, 이들이 실제로 한 일을 들여다보면 그냥 웃어넘길 수는 없다. 통신망을 파괴한 후 의사당을 습격하고 총리를 처형할 계획을 세웠으며 용의자 다수는 중무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검찰에 따르면 이들이 공유한 신념은 "독일이 현재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 구성원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친일 기득권이 대한민국을 움직인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음모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헌법에 따른 선거제도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김의겸 의원이 독일의 반정부 집단과 같이 황당한 일을 벌일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소수 기득권의 지배 아래 있는 비정상적인 곳이라고 여긴다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윤석열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득권 세력의 음모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문서 위조 의혹이라는, 누가 보더라도 결격 사유가 분명한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검찰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치부한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의 주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그 점이 더욱 걱정스럽다. 사실관계가 다른 의혹을 제기하는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인사들이 망상에 가까운 음모론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는 위험한 극단론의 미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신동아 1월호 표지.

금태섭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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