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비·한약·택시비 등 “내년에는 더 비싸진다”
경기도 부천에서 초·중등 영어·수학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최근 “내년부터 수강료를 2만원 인상하겠다”는 내용을 학부모들에게 공지했다. 매일 1시간씩 주 5일 수업에 월 15만원을 수강료로 받아왔지만 종이와 연필은 물론, 운영비와 인건비까지 인상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원장은 “보조교재와 필기구 같은 학용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데 2만2000원이던 A4 용지가 2만4500원으로 올랐고, 학생들 문제 채점하는 아르바이트생 시급은 1만원에서 1만2000원으로 뛰는 등 모든 가격이 뛰었다”며 “3년 만에 처음으로 수강료를 인상한건데 일부 학생들은 학원을 그만둘 것 같다”고 말했다.
식자재·외식비 인상으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종이·색연필·파일 같은 학용품·사무용품 가격은 물론, 한약재·꽃 가격도 인상되면서 학원비와 의료비, 기타 소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올해 3분기 가계 소비지출 현황을 보면 기호품인 담배(-1.4%)나 인테리어 등의 비용이 포함되는 주택유지 및 수선(-25.4%), 가전·가정용 기기(-17.7%), 자동차구입(-15.7%)처럼 ‘선택적 소비’가 가능한 지출은 줄어든 반면, 학원·보습교육(10.5%), 의료용소모품(12.5%), 외래의료서비스(8.3%), 자동차 등 운송기구 연료비(20.7%), 스마트폰 같은 통신장비(7.1%)처럼 ‘필수적 소비’에 가까운 항목에서는 지출이 늘었다. 물가 상승으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줄이는 가운데, 갑자기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품목은 물가가 올라 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올 3분기 가계의 월 평균 지출은 전년 동기대비 6.3% 증가했다.
◇학원비·한약재·꽃값도 인상
학원들이 수강료 인상을 예고하면서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비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 우려한다. 경기도의 한 피아노 학원도 16만~17만원이던 월 수강료를 19만~20만원으로 올린다고 공지했고, 학원을 운영하는 선생님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는 “주4회 8만원을 받던 수강료를 2만원씩 올리기로 했다” “6년째 동결했던 학원비를 내년부터 올려받으려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서울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B원장은 “임대료는 물론, 관리비, 교재비까지 오름세”라며 “과목 여러 개를 수강하면 적용해주던 할인을 없애 실질적인 인상 효과를 노렸다”고 말했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포기할 수도 없는데 학원비까지 올라 힘들다”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 물류 비용이 증가하면서 중국·동남아에서 수입하는 한약재 가격도 급등했다. 한의원들은 비급여 항목인 한약과 봉침 비용을 올려 받아 수지타산을 맞춘다. 경기도 위례의 한 한의원은 “한약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지난 5년간 동결했던 한약 가격을 내년부터 인상한다”고, 김해의 한 한의원은 “7년 이상 가격 인상을 자제해왔으나 누적된 인상 요인으로 2만원이었던 약침과 매선 가격을 3만원으로 인상한다”고 공지했다.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17년 600g에 3만7730원이었던 천마는 작년 5만원으로 32.5% 뛰었고, 같은 기간 맥문동(600g)은 1만6700원에서 2만4600원으로 47.3% 올랐다. 김주영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는 “코로나 이후 물류비가 증가해 1년 새 2~3배 가격이 뛴 약재도 있다”며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인건비 부담 등을 감내해왔는데 약재 값까지 뛰자 일부 한의원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이달부터 타이레놀, 펜잘 등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가격을 인상하면서 겨울철 수요가 많은 감기약 가격도 인상된 상황이다.
코로나 기간 꽃 가격 급등으로 올해 초 가격 인상이 줄줄이 이뤄졌던 꽃집들은 생화 가격 인상세가 누그러들지 않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1만1000~1만2000원 수준이었던 수입 카네이션이 올해에는 1만3000~1만4000원으로 올랐고, 작년 1만6000원이던 장미가 올해 2만2000원으로 가격이 뛰었다. 윤정숙 플로리스트협동조합 이사장은 “예전에는 수요가 많은 때 가격이 오르고, 여름엔 30% 정도 저렴해지는 패턴이 반복됐는데 최근 2~3년 동안은 계속해서 오름세만 이어졌다”며 “재료비가 오르면서 꽃집을 운영해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미 다 올랐는데, 내년도 힘들다
올해 초부터 연쇄적으로 이어진 가격 상승은 직장인들의 연말 송년회마저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강남 일부 지역에서는 소주 한병 가격이 1만원까지 오른데다가, 강북 지역에서도 소주·맥주 가격을 7000원씩 받는 식당이 늘고있다. 호텔들이 연말을 앞두고 뷔페 가격을 일제히 인상하면서 1인당 가격이 20만원에 육박한다. 롯데호텔서울 라세느는 성인 기준 평일 저녁 가격을 15만원에서 18만원으로 올렸고, 서울신라호텔 더파크뷰는 15만5000원에서 18만5000원으로, 조선팰리스강남 콘스탄스는 16만5000원에서 18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원유 가격 인상으로 호텔 케이크 가격이 20% 가까이 오르고, 호텔신라와 조선팰리스는 25만원짜리 고가 케이크까지 내놓았다.
유가 상승과 공급 부족으로 심야 시간 택시비가 오르면서 교통비마저 부담스러운 지경이다. 서울 택시 심야할증 시작이 오후 10시로 당겨지고, 심야 기본 요금이 4600원에서 5300원까지 올랐다. 실제로 올해 3분기 가계 교통비 지출은 31만2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와 비교해 8.6% 증가했다. 내년 교통비 부담은 더 커질 예정이다. 서울시는 내년 2월 중형택시 기본 요금을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인상하고, 기본 거리를 2km에서 1.6km로 단축하는 택시요금 체계 개편을 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택시비까지 인상돼 부담스럽다’고 답변한 사람이 90.3%였고, ‘택시 요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의견이 82.3%였다.
내년에도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열린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올해 전 세계적으로 40년만에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다”며 “내년 후반기는 돼야 3% 내외 수준의 물가 안정세가 나타날걸로 보인다”고 했다. KDI 역시 내년 상반기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4.0%, 하반기 2.5%로 전망하는 등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모두 내년 하반기는 돼야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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