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잊지 않는다…영화 ‘쓰리 빌보드’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은 자유로이 활개 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여자는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요사이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원하는 '좋은 노동자'와 '좋은 피해자'는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황량한 초원. 버려진 광고판 세 개가 줄지어 서 있다. 차를 몰던 중년 여성은 이 광고판에 주목한다. 여자의 이름은 밀드레드. 하지만 그는 동네에서 다른 이름으로 통한다. 누구는 숨을 죽이고, 누구는 한 번 더 고개를 쳐들어 쳐다보게 하는 존재. "당신…안젤라 헤이스의 어머니군요?"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시선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안젤라가 땅에 묻힌 지 벌써 7개월이나 지났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은 자유로이 활개 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여자는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그래, 내가 걔 엄마요. 저 광고판 1년 동안 빌리는 데 얼마요?"
영화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 밀드레드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잊지 말라고 소리친다. 낡은 광고판 3개가 그녀의 확성기다. 하얀 페인트로 적힌 문구는 간결하다.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아직도 못 잡았다고? 죽어가며 성폭행당한 내 딸을?" 딸의 죽음을 없는 셈 치려는 이들을 향해 부채를 똑똑히 기억하라는 외침은 동네를 뒤흔든다. 사람 좋은 경찰서장의 이름을 명시한 데다 범행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다는 게 이웃들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다. 급기야 교구 목사까지 광고를 내리라며 설득을 시도하지만, 밀드레드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광고판 좀 걸었더니 사방에서 연락이 온다며 코웃음 칠 뿐이다.
요사이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원하는 '좋은 노동자'와 '좋은 피해자'는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 뭐라도 요구하는 건 언감생심. 슬퍼하는 건 괜찮지만, 그것도 적당히 하지 않으면 빈축을 산다. 심지어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서로 만나서도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노동 조건에 놓여 있어도, 얼마나 황망한 사고로 목숨을 잃어도, 묵묵히 알아서 해결하고 조용히 죽어가야만 동정을 베풀어주겠다는 듯하다.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