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예산 수백억 감췄다가…“당선자 선물”이라는 지자체 공무원

한겨레 2022. 12.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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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나라살림][한겨레S] 이상민의 나라살림
무능력이 빚어낸 예산참사
지자체 인수위 업무보고 도중
추경에 반영됐어야 할 340억원
직원이 지출 시기 맘대로 조정
지자체 잉여금 총 69조원 달해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잠겨 있는 돈(잉여금)이 69조원에 달해 ‘돈맥경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사진은 한 시민이 예산 관련 토론회 자료집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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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방선거 직후 한 지방자치단체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선자와 인수위원들은 몇주에 걸쳐 업무보고를 받는다. 작년 결산자료를 요청해서 보니 일반회계에 남은 돈(순세계잉여금)이 760억원 있다. 남은 돈은 올해 세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올해 본예산에는 420억원이 반영되었다. 즉, 760억원 중에 42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340억원의 여윳돈이 현금으로 있다. 본예산에서 반영하지 않은 남은 돈 340억원은 추경에 편성되어야 한다.

이전 단체장은 선거 전 1차 추경을 편성했다.즉, 작년에 쓰고 남은 돈 340억원을 1차 추경에서 손실보상금 등으로 지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차 추경에 남은 돈을 단 한푼도 인식하지 않고 추경에 편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패하고 지금은 야인이 되었다.

올해 초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쟁점은 ‘손실보상금’ 지급 규모였다. 당시 윤석열 후보도 큰 폭의 손실보상금을 약속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당선 직후 2차 추경에서 무려 29조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직전에 1차 추경에서 큰 폭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기획재정부는 돈이 없다며 제한적인 손실보상금만 지급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기재부는 53조원의 초과 세수가 있다면서 대규모 손실보상금 지원에 필요한 2차 추경이 국채 발행 없이 가능하다고 했다.

쓰고 남은 돈 어디로?

비슷한 일이 지자체에도 벌어졌다. 다만 중앙정부보다 더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중앙정부는 올해 발생할 세입 예측을 잘못한 것이다. 올해 세입 예측은 틀릴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경기변동 상황에서 세입 예측을 잘못했다고 억지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는 있다. 최소한 일부러 틀렸는지, 또는 모르고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지자체의 남는 돈 순세계잉여금은 올해 발생할 세입 얘기가 아니다. 작년에 쓰고 남은 돈이다. 작년에 남은 돈이 얼마인지는 본예산 편성 때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작년 12월31일 세입·세출이 마감되고 정산하면 작년에 남은 돈 규모는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 즉, 이전 단체장이 1차 추경을 할 때 340억원이 추가 지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

업무보고를 받고 재정국장을 불러서 구석에서 살짝 물어봤다.

“작년 결산자료를 보니 760억원 남은 돈 중 올해 본예산에 반영하지 않은 돈 340억원을 지난 단체장 시절 1차 추경에서 썼어야 했는데요. 왜 1차 추경에서 안 썼나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혹시 이월금 얘기하시는 건가요?”

“아뇨, 이월금 말고 남은 돈, 순세계잉여금 말하는 거예요. 국장님도 모르시네요. 그럼 예산과장님 좀 불러주세요.”

국장 호출을 받아서 예산과장이 곧 왔다. 구석에 가서 예산과장에게 또 물어봤다. “1차 추경 때 순세계잉여금 340억원 왜 안 썼나요?” 예산과장이 깜짝 놀라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눈을 굴린다.“아니, 그냥 선수끼리 솔직히 말해요. 왜 1차 추경 때 340억원 안 썼나요?” 예산과장이 씩 웃으면서 말한다.

“당선자를 위해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얘기다. 기초지자체 일개 예산과장이 단체장은 물론 국장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임의로 300억원이 넘는 돈의 지출 시기를 조정하는 정무적(?) 판단을 한다는 얘기다. 낙선한 이전 단체장은 자신의 심복이라고 믿었던 예산과장이 자신을 배신했는지 알고 있을까? 물론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 단체장은 피해자만은 아니다. 나는 이전 단체장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4년 이상 지자체를 이끌었다면 최소한 남는 돈이 얼마인지 정도는 알았어야 했다. 행정을 장악하지 못했던 무능력이 빚어낸 참사다.

나는 바로 당선자에게 보고했다. “축하드립니다. 340억원의 여윳돈이 있습니다. 그 돈으로 하시고 싶은 공약 사업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다만 저 예산과장은 믿지 마세요.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선자님을 위해 돈을 남긴 것이 아니에요. 자신을 위해서 돈을 남긴 겁니다.”

“자신을 위해 돈을 남겼다는 것이 무슨 의미죠? 어차피 자기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아니잖아요?”

“물론 아닙니다. 당선자께서 행정을 하시다가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예산과장을 부를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겠죠. ‘나는 저런 사업을 했으면 좋겠는데 한 20억원이 든다고 해요. 그 정도 돈 있을까요?’ 그럼 이렇게 답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지 돈을 마련해보겠습니다’라고 한 뒤 바로 다음날 짠 하고 20억원을 마련해 오겠죠. 그럼 당선자는 ‘역시 김 과장님은 최고예요. 일 정말 잘합니다’라고 하겠죠. 예산과장은 이런 식으로 당선자의 신뢰를 얻으려 합니다. 더욱 나쁜 것은 남은 돈이 얼마인지 전임 구청장은 물론 국장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비법’을 마련한 것이죠.”

지자체 금고에 잠긴 돈 69조원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지자체의 현실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저 예산과장이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란 데 있다. 어딘가의 부서 과장도,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부서 주무관도 자신이 행정을 하기 편하게 감춰둔 돈이 있다. 이렇게 감춰둔 돈이 모여서 2021년 전국 지자체에 잠겨 있는 돈(잉여금)이 69조원에 달한다. 69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사실상 현금 형태로 시금고 은행에서 놀고 있다. 아무런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지자체에 69조원이라는 큰돈이 잠겨 있다는 의미다. 이 정도 규모의 ‘돈맥경화’라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다. 이 중 이월금 등을 제외하고 지자체에 남은 돈(순세계잉여금)만 31조원이 넘는다. 작년 중앙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적극적 재정을 한다고 30.5조원의 재정수지 적자를 감내했다. 그러나 사실상 현금 형태로 지자체에서 놀고 있는 돈이 31조원이 넘는다.

특히, 작년에 남은 돈 31조원은 올해 본예산에 다 반영될 수는 없다. 그래도 1차 추경에는 반드시 전액 반영되었어야만 했다. 내부 장부에 있는 돈을 공개 장부(추경예산)에 반영하지 않는 것은 분식회계적인 행위다. 그러나 대단히 많은 지자체에서 1차 추경에 반영하지 않았다. 본인 지자체에서 남긴 돈조차 1차 추경에서 쓰지 못하고 선거에서 떨어진 단체장들은 1차 추경에서 예산과장들에게 배신당하고 적극적인 손실보상금을 지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과연 지금이라도 인지하고 있을까?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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