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2022년 과학에 어둠 드리운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는 국제 과학계서 고립
英화성탐사, 韓위성발사도 지연
입자가속기, 동토층 메탄 연구도 차질
빛이 밝으면 어둠도 짙다. 올해 과학계는 사상 유례 없이 역사적인 성과를 잇따라 거뒀지만, 국제 협력의 붕괴와 에너지 위기, 온난화 가속화라는 문제도 봉착했다. 모든 문제는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됐다. 바로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를 비롯해 과학 전문지인 뉴사이언티스트, 사이언스뉴스는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과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1호, 소행성 충돌 실험, 돼지 심장 이식, 인공지능의 단백질 구조 해독과 함께 2022년 과학을 뒤흔든 주요 뉴스로 꼽았다.
◇우크라이나 과학 무너지고 러시아는 고립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까지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400만 명을 피난길에 오르게 했다.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상승했으며, 온실가스 배출도 다시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달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대유행, 기후변화 같은 위기가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세계에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과학은 연구 기반이 무너졌다. 대학과 연구소가 포격으로 파괴됐으며 연구비는 절반까지 줄었다. 연구자들도 외국으로 피난을 가거나 군대에 징집되면서 절반만 연구 현장에 남았다고 사이언스뉴스는 전했다.
러시아 출신 미국 기업가는 우크라이나 과학 지원에 나섰다. 미국의 브레이크스루상재단은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연구자들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한 데 이어 10월에 2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했다. ‘실리콘밸리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은 지난 2012년 옛소련 출신 물리학자인 유리 밀너가 페이스북(현 메타)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와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과 함께 만든 상이다.
러시아 과학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의 주요 연구비 지원기관들은 러시아와 협력을 중단했다.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도 지난 6월 러시아와의 과학협력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과학계는 국제협력 중단으로 연구비가 급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경우 1990년대 옛소련 붕괴 때처럼 젊은 과학자들이 대거 해외로 이주하는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우주에서 시베리아까지 국제 협력 중단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과학협력이 중단되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유럽우주국(ESA)은 올 9월 러시아 프로톤 로켓으로 하려던 엑소마스(ExoMars) 화성 탐사 로버의 발사를 2028년으로 미국 로켓으로 하겠다고 연기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 3월 자국 소유즈 로켓으로 하려던 영국 원웹(OneWeb)의 우주인터넷용 위성 발사를 거부했다. 원앱은 10월 인도 로켓으로 위성을 발사했다.
우리나라도 올 하반기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6호를 러시아 앙가라 로켓으로 러시아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차세대 중형위성 2호는 러시아 소유스 로켓을 이용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각각 발사할 계획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산됐다. 우리 정부는 미국 스페이스X사의 펠컨 로켓이나 유럽의 아리안 로켓으로 위성을 발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러시아와 동맹국인 벨라루스와 공동 연구 협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협약은 2024년 만료된다. 이 경우 CERN 연구진의 8%를 차지하는 1000여명의 러시아 연구자들이 힉스 입자를 발견한 아틀라스(ATLAS) 입자가속기 같은 연구 시설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북극 이사회(Arctic Council)도 지난 3월 7국 명의로 러시아와 연구 협력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북극 이사회는 1996년에 발족한 북극에 관한 여러 현안을 논의하는 정부간 협의 기구이다. 북극에 인접한 노르웨이, 덴마크, 러시아, 미국, 스웨덴, 아이슬란드, 캐나다, 핀란드의 여덟 나라가 회원국이다.
최근 온난화로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 방출되고 있다. 영구동토층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와 단절되면 연구비를 받지 못해 관련 연구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방사능 유출, 온실가스 증가도 우려
당장 전 지구적인 환경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네이처지는 지난 15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올해의 과학뉴스로 꼽으면서 “유럽 최대의 자포리자 원전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서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한 공포를 유발했다”고 밝혔다.
가장 심각한 일은 에너지 위기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이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막자 유럽이 대신 석탄을 사용해 그동안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했다. 사이언스는 지난 15일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에너지 시장을 교란해 가격 상승을 유발했으며 온실가스 감축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막자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했다. 이로 인해 앞으로 2년간 온실가스 배출이 20% 늘 것으로 예측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고 사이언스는 전했다. 유럽이 러시아 천연가스 대신 미국과 중동산 액화천연가스를 수입하면서 시추공과 수송관, 저장소에서 또 다른 온실가스인 메탄 누출도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연구소들도 에너지 위기를 맞았다. CERN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지난달 28일 당초 계획보다 2주 앞서 최대 입자가속기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 10월 네이처는 CERN이 내년 입자 충돌 실험 횟수를 줄인다고 공식 발표했다고 전했다. 우크리아나 전쟁은 과학이 평화로운 세상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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