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그 가습기 살균제도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이효상 기자 2022. 12. 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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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연구서 CMIT·MIT 성분 폐 도달 첫 확인
“시간 지나도 높은 농도 잔류” 2심 뒤집힐지 기대
가습기 살균제 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8월 30일 서울 마포 노을공원에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 이준헌 기자

[주간경향]“가습기 살균제가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햇수로는 약 12년 전인 2011년 이런 실험 결과가 나왔어야만 마땅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지난 12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들이 언급한 실험 결과는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12월 8일 공개한 연구다. 이 연구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 물질 중 하나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이 호흡기를 통해 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연구가 너무 늦어졌다는 피해자들의 탄식에는 이 연구가 기존 법원 판단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담겼다.

그렇다. 아직 이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제조·판매사들의 책임을 묻기 위한 법정 공방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SK케미칼·애경·이마트의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1심은 책임자 13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이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옥시·롯데마트 등 다른 제조·판매사의 경우는 이미 2018년에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나왔다.

책임 추궁의 속도와 결론에 차이가 난 것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드는 데 사용한 성분이 제조사 별로 달랐기 때문이다. 옥시 등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사용했다. SK케미칼은 CMIT·MIT를 사용해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었다. 애경산업이 이를 판매했고, 이마트는 이 제품을 납품받아 자체 브랜드 상품을 내놨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사실상 출발선이었던 2011년부터 사용 성분에 따른 차이가 나타났다. 그해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부터 꾸준히 보고된 원인 미상 폐 손상의 주범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각 성분 물질의 독성을 확인하기 위한 동물흡입시험을 진행했다. 당시 실험에서 PHMG와 PGH에 노출된 쥐들은 이상 소견을 보인 반면, CMIT·MIT에 노출된 쥐들에서는 명확한 ‘폐 섬유화’ 증상이 나오지 않았다. 직후 제품 강제수거명령이 내려졌는데 PHMG, PGH 계열 제품만 대상이 됐고, 해당 제품 제조사들만이 검찰에 고발됐다.

문제는 CMIT·MIT 계열 제품을 사용했다가 병을 얻거나 사망한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30일 기준으로 정부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7799명이다. 정부가 구제급여 지급을 결정한 사람이 4417명인데, 이중 SK케미칼·애경·이마트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1581명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지원을 결정한 피해자 3명 중 1명이 CMIT·MIT 계열 제품을 사용한 셈이다.

옥시 제품처럼 이들 제품의 독성을 확인하기 위한 동물실험이 10여년간 계속됐다. 이를 근거로 검찰이 SK케미칼 등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지만, 지난해 1심 법원은 이들의 형사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10여건에 달하는 CMIT·MIT 동물실험을 단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CMIT·MIT 노출과 건강 영향 간의 인과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3가지 기준이 충족돼야 한다고 봤다. 첫째는 CMIT·MIT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고, 둘째는 CMIT·MIT가 흡입으로 폐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하며, 셋째는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정도의 양이 축적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그간의 동물실험이 이들 기준 모두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실험이 게임 체인저 될까
비강에 CMIT·MIT가 노출된 지 5분, 6시간, 1주일이 지난 시점에 촬영한 실험용 쥐의 체내 CMIT·MIT 분포도. 비강을 통해 폐까지 들어와 전신으로 퍼졌으며, 1주일이 지난 이후에도 CMIT·MIT 성분이 검출됐다. / 국제학술지 ‘국제환경’ 제공

이런 상황에서 국립환경과학원이 경북대학교 연구진(전종호 교수),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이규홍 단장)와 함께 CMIT·MIT가 비강이나 기도를 통해 폐까지 도달한다는 새로운 동물실험 결과를 내놨다. ‘CMIT·MIT의 폐 도달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1심 재판부 판단에 대한 반증이다.

1심 재판부는 물리화학적 특성상 CMIT·MIT는 폐까지 도달하기 어렵다고 봤다. 고분자중합체로 체내에 잔류하기 쉬운 PHMG, PGH와 달리 저분자 화학물질인 CMIT·MIT는 물에 잘 녹고, 몸에서 잘 분해돼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된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호흡기로 흡입한 물질은 상기도와 하기도를 거쳐 폐로 전달된다. 재판부는 CMIT·MIT를 흡입하더라도 비강 등 상기도에서 상당 부분 흡수돼 폐까지는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환경과학원은 몸속에서 CMIT·MIT가 실제 어떻게 이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CMIT·MIT에 방사성 추적자를 합성했다. 방사성 추적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화합물이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될 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하면 해당 물질이 몸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방사성 추적자를 합성한 CMIT·MIT를 실험용 쥐의 비강과 기도에 노출시킨 결과, CMIT·MIT가 비강과 기관지를 거쳐 폐까지 이동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확인됐다. 폐를 통해 전달된 물질이 간과 신장, 위장과 심장, 뇌 등 전신으로 퍼져나간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환경과학원은 이들 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머무는지 확인하기 위해 5분, 6시간, 1주일 단위로 방사능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최초 노출 후 1주일이 지난 후에도 기관지와 폐에서 CMIT·MIT 성분이 검출됐다.

이번 연구에서는 CMIT·MIT의 독성을 확인하는 실험도 병행됐다. CMIT·MIT를 반복 노출한 후 실험용 쥐의 기관지 폐포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 및 섬유화 지표가 노출 농도에 따라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 ‘비강 및 기관 내 투여 후 CMIT·MIT의 체내 거동 및 호흡독성’은 환경과학 분야 상위 5% 수준의 국제학술지인 ‘국제환경’ 12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전달돼 폐 손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첫 번째 보고서”라며 “이 연구의 결과는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연구진은 “최근 한국에서 진행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의 노출이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재판에서 제조사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법원 판결문에는 현재까지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이러한 결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대와 우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2020년 12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질병관리본부의 2011년 가습기메이트(CMIT·MIT) 독성실험 적정성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피해자들과 일부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SK케미칼 등의 항소심 재판에서 기존 판단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가 1심 재판부의 3가지 판단기준 모두를 어느 정도는 충족했다는 판단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흡입독성연구단장은 “1심 재판부가 판단 근거로 들었던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연구”라며 “CMIT·MIT가 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이 확인됐고, 물질이 코를 통해 폐까지 이동하며, 폐 내에서 꽤 오래 잔류하는 것도 확인됐다”고 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노출 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도 폐에서 상당히 높은 농도가 검출됐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비강에 노출한 후 6시간 이후 측정한 결과를 보면 폐에서 검출되는 농도가 2번째로 높고, 일주일 이후 측정한 결과를 보면 폐에서 검출되는 농도가 가장 높다. 폐로 상당량이 도달된 것이 확인됐다”라고 했다.

검찰도 이번 연구 결과를 항소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할 방침이다. 항소심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자료로 보고 있다”며 “오는 12월 22일 열리는 항소심 2차 공판 기일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절차에 따라 증거로 제출하겠다”라고 했다.

우려도 공존한다. 이번 연구 자체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사법부가 형사소송에서 과학적 실험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에 가깝다. 형사소송에서는 민사소송보다 피고(인)의 책임을 입증하는 것이 훨씬 까다롭다. 1심에서도 CMIT·MIT의 위해성을 보여주는 동물실험 결과가 증거로 제출된 바 있다. 한 실험에서는 CMIT·MIT에 노출된 실험용 쥐가 6일 만에 사망했고, 또 다른 실험에서는 CMIT·MIT에 노출된 임신한 암컷 쥐가 사산하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1심 재판부는 실험용 쥐에 사용한 용량이 지나치게 과도했다는 이유로, 코로 물질을 흡입한 게 아니라 기관에 물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사망의 원인이 폐 손상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 실험결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쉽게 말해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과 동일한 환경으로 동물실험을 수행했을 때, 폐 섬유화 병변 등이 발생했다는 실험적 증거가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며 물질의 노출 농도, 실험 방식 등을 달리해 물질 자체의 유해성을 입증하려 했던 학자들은 이 질문에 확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한 치의 불확실성도 남지 않아야 한다는 재판부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간극이 그만큼 컸던 셈이다.

결국 재판부의 해석에 달린 문제라는 얘기다. 권정환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항소심도 1심처럼 검찰의 입증 책임을 강하게 요구한다면 똑같은 상황이 유지될 수 있다. CMIT·MIT가 폐에 도달한 것이 확인됐다고 해도, 실험용 쥐에게 얼마나 많은 양을 노출했는지, 노출량 대비 얼마만큼의 양이 폐 조직으로 들어갔는지를 피고인 측 변호인이 따질 수 있다”며 “폐에서 염증 지표가 증가했다고 해도 폐 섬유화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기에 1심 재판부처럼 완벽한 증거를 요구한다면 여전히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시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CMIT·MIT의 물리화학적 특성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오해로 인해 부득이 이번 연구가 수행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CMIT·MIT를 비강에 노출했을 때 폐까지 간다는 결과는 과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PHMG, PGH가 폐로 들어가서 석회층을 일으킨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PHMG, PGH는 고분자인 반면, CMIT·MIT는 단분자로 크기가 훨씬 작다. PHMG, PGH가 폐까지 들어가는데 그보다 작은 CMIT·MIT가 폐까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간 연구자들이 PHMG와 CMIT·MIT의 독성의 차이에 집중했기에 이번과 같은 연구 결과가 없었던 것인데 1심 재판부가 갑자기 폐까지 들어가는지를 쟁점으로 삼으면서 이슈가 됐다”고 말했다.

흐름 바꿀 추가 연구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지난 3월 31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윤석열 당시 당선인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전부 무죄”라는 1심의 단호한 결론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번 연구처럼 추가 실험 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일부 연구자들은 CMIT·MIT 성분의 동물흡입시험을 수행 중이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비강과 기도에 물질을 묻혀 체내 반응을 관찰한 이번 실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실험에서는 염증이 일어나기 전 단계의 면역 반응을 관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판결 이후 새로운 역학조사 결과도 나왔다. 역학조사는 특정 질병이 집단적으로 발병한 경우 그 원인과 발병 양상, 전파경로 등을 규명하는 것을 말한다. 1심에서도 몇 가지 역학조사와 피해자 임상연구가 증거로 제출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사람과 신체 구조가 달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동물실험보다 사람에게 발생한 병변을 연구하는 역학조사에 힘을 쏟았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1심 선고 이후 기존보다 엄격한 방법론을 채택한 역학조사 결과가 최소한 2건 나왔다. 이들 연구는 CMIT·MIT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천식 발병 위험이 유의하게 높아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월 24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천식 피해 특성 연구(2)’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역학연구가 한 단계 진보해 가습기 살균제 천식의 임상 특이성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PHMG, PGH 성분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폐 손상이 발견되고 피해 사례자가 많다 보니 형사책임이 비교적 수월하게 입증됐다. 다른 물질임에도 CMIT·MIT를 PHMG의 경우에 대입하다 보니 혐의 입증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기존에 신고된 피해자들의 자료를 잘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 급선무일 수 있다. 형사재판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긴 호흡을 가지고 피해자들의 질병 스펙트럼을 정리하고 공통점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런 작업이 오히려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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