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대던 여야, ‘집회 금지’엔 대동단결
대통령 집무실·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 금지 위헌 소지
[주간경향]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진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해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용산 대통령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의 주변 100m 이내에서는 예외 없이 집회·시위가 금지된다.
시민사회단체는 “집회금지 장소를 확대함으로써 집회·시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개악”이라며 폐기를 촉구한다.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권과 관련한 중대한 사안인데도 국회의원들이 안일한 태도를 보인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법원은 입법을 통해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집회금지 장소에 설정한다고 해도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전직 대통령 사저의 주변을 집회금지 장소에 포함시키는 내용은 대통령 집무실보다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을 ‘주고받기’ 했지만, 민주당에 불리한 ‘거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의 있습니다”, “그냥 하세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지난 11월 23일 집시법 개정안 등 여러 상정 안건을 심사했다. 100m 주변 집회금지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추가하는 법안(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발의),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법안(정청래 민주당 의원 발의) 등도 포함됐다. 현행 집시법 제11조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의 공관만 원천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한다.
회의 속기록을 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심도 있는 토론 없이 집시법 개정안 통과에 합의했다. 우선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금지 장소에 추가하는 내용을 두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찬성 의견을 개진했다. 김 의원은 “국가원수로서 여러 목소리를 듣는 방식은 다양하게 있다”라며 “사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법에 미비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은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민주당 측은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법안을 논의할 때 말문을 열었다. 오영환 민주당 의원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과 경호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예우 및 신변보호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인지해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라며 “현행법상 소음기준 제한 규정으로도 충분히 방지가 안 됐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마을의 많은 주민이 고통을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목도한 상황”이라며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거들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의 사저 앞까지 가서 시위를 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임호선 민주당 의원이 “김웅 위원님의 고견에 공감한다”라며 지지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소속 이만희 소위원장은 해당 법안을 처리키로 했다.
행안위는 지난 12월 1일 집시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부쳤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다. 용 의원은 지난 6월 집회금지 장소를 아예 없애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용 의원은 회의에서 “절대적 집회금지 구역을 추가한 이번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크다”라고 했다. 용 의원은 특히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 수호 전통에 오점을 남기는 것임을 인식하고 개정안을 부결해 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천준호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추가하는 내용에만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국민의힘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야) 간사 간에 사전에 합의해 통과시키기로 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용 의원과 천 의원이 “이의 있다. 표결해 달라”, “반대한다”는 등 계속 반발하자 이 위원장은 잠시 여야 간사와 협의를 진행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교흥 의원은 “그냥 하세요”, 국민의힘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그냥 진행하십시오”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여야 간사가 합의한 법안이라는 점을 재차 언급하며 “두 분의 의견은 속기록에 반대의견을 등재해 의결하고자 한다”라고 말한 뒤 표결 없이 가결을 선포했다.
행안위를 통과한 해당 개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향후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어떤 견해를 보일지 주목된다. 특히 법사위원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집회·시위 금지구역의 범위를 좁히는 한편,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 등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법원 “위헌 소지 상당해”
집시법 개정안이 행안위 소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은 연일 법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20개 단체는 지난 11월 28일 개정안의 문제점을 담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12월 6일 법사위원들에게 보낸 의견서에서 “이번 집시법 ‘개악안’은 거대 양당이 전·현직 대통령 지키기라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입법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정치적 야합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위헌적이고 비민주적인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금지와 다른 일반인과 달리 특혜를 부여하는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집회금지의 입법화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법사위의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1963년 1월 집시법 제정·시행 이후 절대적 집회금지 장소의 대상과 범위는 점차 축소돼왔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2018년 국회·법원·국무총리 공관의 100m 주변에서 예외 없이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국회는 예외적으로 집회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이를 두고도 헌재의 결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높았지만 원천 금지보다는 진일보한 내용이었다. 이번 집시법 개정안을 통해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장소를 새롭게 추가하는 건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5월 경찰이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를 금지한 것을 두고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사건의 결정문에도 위헌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강우찬)는 지난 5월 26일 집시법에서 100m 이내 절대 집회금지 장소로 ‘대통령 관저’를 명시한 것을 놓고 “국가원수로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고충을 직접 듣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는 국가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대통령 직책의 특수성을 고려해 ‘대통령 집무실’ 등 대통령 업무가 이뤄지는 공간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로 지정하지 아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지는 대목은 특히 주목된다. “이런 맥락에서 의회가 대통령 집무실 자체를 상대적 금지가 아닌 ‘절대적’ 집회·시위 금지장소로 정하는 입법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위헌의 소지는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집시법 개정을 통해 절대 집회금지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포함시키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의 집회금지가 대통령 집무실과 비교할 때 위헌성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 집무실은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직 대통령과 관련되지만, 전직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 행안위 전문위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집시법 개정안의 검토보고서에도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현재 집시법에서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한 장소는 모두 헌법기관인 데 반해 “전직 대통령이 일정한 헌법상 지위에서 국가정책 결정 등의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집시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의 평온을 해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존재한다는 점도 거론했다. 집시법 제14조에 따라 확성기 등 기계·기구를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소음피해를 주면 규제할 수 있다. 또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전직 대통령의 경호구역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 대통령 경호처는 지난 8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경호구역을 확대했다. 이는 사저 주변 300m 이내에서 집회·시위를 차단하는 효과를 냈다.
보고서는 “집회·시위의 권리 역시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요소로서 보호돼야 할 법익인 점을 심사 때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고 밝혔다.
경찰, 대통령 집무실 집회금지에 찬성
경찰청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집회금지 구역에 포함하는 내용에 찬성했다. 반면 전직 대통령 사저는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경찰은 그간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5월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부터 대통령실 앞 집회신고에 원칙적으로 금지통고를 내렸다. 집시법에서 집회금지 장소로 명시한 대통령 ‘관저’에는 집무실도 포함한다는 자체 해석에 근거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등 집회 주최 측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사건에서 법원은 여러 차례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은 별개”라고 판단, 집회를 허용했다.
그러자 경찰은 지난 11월 교통혼잡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는 ‘주요도로’에 ‘이태원로’ 등 16개 도로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태원로는 용산 대통령실 바로 앞을 지나는 도로다. 경찰청은 이런 내용이 담긴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가경찰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렸다. 경찰위원회는 그러나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통과시키지 않고 재상정 결정을 내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이 ‘관저=집무실’이라는 자체 논리가 법원에서 잇따라 배척되자 대통령실 앞 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우회로를 고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후에도 “이태원로는 주요도로 정비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에 제외할 수 없다”라며 관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보강 작업을 통해 최대한 빨리 경찰위원회에 재상정하겠다”라고도 했다.
최근 국회에서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집회금지 장소에 넣는 집시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당분간 국회 논의 상황을 지켜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굳이 주요도로에 이태원로를 넣지 않아도 대통령실 앞 집회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찰청 관계자는 “집시법 개정안과 주요도로 정비는 별개 사안”이라고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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