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절벽에 '몸집 줄이기'…전국 곳곳 대학 통폐합 움직임
"학교 측 일방 추진 부당해"…재학생들 반대 집회·서명운동 등
전문가 "통폐합·폐교 과정서 사회적 비용 발생…대안 마련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급감 여파로 전국 각지에서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교들이 속출하고 있다.
존립의 갈림길에 선 대학교 중에서는 학교 간 통폐합을 통해 선제적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곳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합쳐야 산다'…곳곳서 통폐합 움직임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8월 발표한 '2022년 교육기본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기준 전체 유·초·중·고교 학생 수는 587만9천768명이다.
1986년 학생 수가 1천31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것을 고려하면 35년 만에 학령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인데, 이에 다른 대학과 통합하며 자구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18일 대학가 등에 따르면 경북 문경시는 서울 소재 숭실대와 2∼4년제 사립대인 문경대를 통합, 숭실대 문경캠퍼스를 설립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경대가 근래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자 지난 지방선거 당시 신현국 문경시장이 이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문경시와 문경대는 지난 10일 숭실대 문경캠퍼스 설립을 위한 공동 노력 확약서에 서명한 상태이다.
문경대 측은 "숭실대와 통합이 성사되면 위기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통합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안성 소재 한경대와 평택 소재 한국복지대도 내년 3월부터 '한경국립대학교'로 새로 문을 연다.
두 대학은 모두 국립대로 지난해 교육부에 통합 신청서를 냈으며, 교육부는 국립대학 통폐합심사위원회 심의를 9차례 진행한 끝에 통합을 승인했다.
국립대인 충남대는 같은 지역 국립대인 한밭대와 통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충남대는 올해 초부터 대학 통합 연구용역과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설명회 및 공청회 등을 거쳐 학무회의, 대학평의원회의 등을 열고 '두 대학 간 통합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진숙 충남대 총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거점국립대로서의 역할 수행에도 어려움이 크다"며 "한밭대와 통합이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부산교대도 최근 부산대와 통합 여부 관련해 '부산교대 발전방안에 대한 의견교환회'를 열고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교수회의를 진행하는 등 의견 수렴 절차에 돌입했다.
앞서 부산교대는 전임 총장 시절인 지난해 4월 부산대와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나, 이후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학교는 이번 논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이달 중 최종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같은 학교법인의 두 대학이 통합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학교법인 원석학원은 경북 경주에 있는 산하 경주대와 서라벌대 통합을 위해 지난달 7일 정두환 서라벌대 총장을 경주대 총장 직무대리로 선임했다.
4년제인 경주대와 2∼4년제인 서라벌대는 지난 4월 교육부에 통폐합 승인 신청서를 냈으나, 양교 구성원의 결합과 경주대의 재정 문제 등으로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원석학원 이사회는 두 대학 구성원의 화합과 통폐합 완성을 위해 정 총장을 통합 총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학교법인 고운학원도 산하 대학인 수원대와 수원과학대에 대한 통합계획서를 지난 9월 교육부에 제출한 상태다.
고운학원은 수원과학대의 학생 충원율이 지난 2년간 70% 안팎에 그치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교육부의 심의를 거쳐 통합이 승인될 경우 이르면 2024년부터 2~4년제 전문대인 수원과학대의 신입생 모집은 중단되며, 4년제 사립대인 수원대는 1천140명을 추가 모집할 수 있게 된다.
"재학생 빠진 통폐합 논의는 부당"…학교 구성원들 반발도
대학교 간 통폐합 논의를 두고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이 불거지는 사례도 잇따른다.
지난 10월 충남대가 한밭대와 통합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재학생 등 111명은 "학생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채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며 대학본부 앞에서 학과 점퍼를 벗어놓고 통합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대학 총학생회도 성명문을 내고 "학생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통합논의 시작이 통과됐다고 한다"며 "왜 중요한 조사는 시험 기간에만 하는 것이냐,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며 항의했다.
올해 중순 수원대와 수원과학대의 통합 논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두 학교 재학생들 가운데서 반발이 일었다.
당시 수원대 일부 재학생은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통폐합 관련 내용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방학 중 언론 보도를 통해 이를 알게 됐다"며 항의했다.
이들은 지난 7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수원과학대 재학생 10여명도 비슷한 시기 비대위를 구성해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앞에서 수일간 피켓 시위를 하고 "학교 측에서 수원과학대를 수원대로 통폐합할 것을 사전에 계획하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올해 간호·항공 분야 등 인기 학과 입학 정원을 늘렸다"며 반발했다.
부산교대에서는 지난 3월 이 대학 총학생회가 재학생 372명을 대상으로 부산대와의 통합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83.6%가 통합을 위한 MOU를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통합을 반대한 재학생 76%는 '해당 MOU가 학생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대학 동문 일부는 학교 정문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문가 "대학 수 계속 줄어들 것…대안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통폐합과 폐교 절차를 밟는 대학들이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당장은 학교 또는 학과 간 통폐합을 하며 신입생 모집 규모를 줄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나 지금 같은 학령인구 감소 추세가 계속된다면 본격적으로 폐교 절차를 밟는 대학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 수가 줄어드는 시점이 되면 교직원의 복리후생은 물론 해당 지역경제까지 타격을 입는 경우가 잇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한계 상황에 직면한 대학들이 신속하게 대응 전략을 판단해야 이에 수반되는 각종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관계 당국이 이러한 대학들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등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 수를 줄이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성엽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 원장은 "대학을 청년들만을 위한 곳으로만 본다면 현재의 학령인구 감소세가 위기로 여겨지지만, 사실 대학은 중장년층도 학습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이라며 "각 대학이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을 위한 직업교육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문턱을 낮춘다면 현재의 위기를 어느 정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의 수를 줄이기만 한다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다양성도 위협받게 될 수 있다"며 "정부가 각 대학을 생애 전 주기의 교육이 이뤄지고 다양한 직업군의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바라보고 관련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철홍 윤태현 김재홍 손대성 김진방 윤우용 허광무 이주형 김동민 강태현 김도윤 전지혜 김솔 기자)
s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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