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 빗장’ 후폭풍 ③] 정부-경제계 대응책 마련 고심…“외교력 중요한 시점”
본격 시행 전 정부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 촉구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유럽연합(EU)이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우리 경제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우리나라의 대(對)EU 수출 주력 품목 중 하나인 철강을 비롯해 석유화학·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돼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인 기업 지원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외교력을 발휘해 유예나 면제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CBAM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하는 경우 해당 제품의 연계된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EU 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가격을 부과·징수하는 조처다.
18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EU가 CBAM을 도입할 때 우리 기업이 지급해야 할 탄소국경세는 철강 부문 기준 연간 702억원으로 추정된다.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칠 수치는 아니지만, EU가 일정대로 유상할당 비율을 확대해 나가면 연간 부담액은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연구원은 보고 있다.
수출량도 줄어들 전망이다. UNCTAD가 CBAM에 따른 국가별 에너지집약제품 수출 변화를 분석한 결과 내장 CO2(이산화탄소) 배출량 1t당 가격을 44달러로 했을 때 우리나라의 수출량은 0.15%, 88달러로 했을 때 0.33% 각각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됐다. EU 기업에만 가격을 매겼을 때 1% 안팎의 수출량 증대가 예상되는 것과 비교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가운데 EU가 CBAM을 도입하면 철강, 에너지 등 주요 산업을 중심으로 상당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국제적인 규제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우리 기업이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정부가 지원해주는 한편 국내에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착수하는 분위기다. 일단 EU에 일정 부분 CBAM 적용 면제 등의 예외 조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당국자와 회동하며 EU ETS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 중인 한국의 ‘K-ETS’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유럽과 가격 면에서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도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실천하고 있는 만큼 이를 감안·반영해 일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EU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민·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기준에 맞는 탄소 배출량 산정·검증에 대한 기반시설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 간 통용될 수 있는 글로벌 탄소배출량 방법론 개발도 시급한 과제로 손꼽힌다.
궁극적으로는 제품 생산의 저탄소화를 통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친환경 철강제품인 수소환원제철 생산 등 제품의 저탄소화를 위한 R&D(연구개발) 및 상용화 지원이 정부 차원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업계 일각에선 EU의 CBAM 도입에 따른 우리 기업의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선 감소 폭이 작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충분한 준비가 뒤따르면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부도 우리 기업의 저탄소 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2030년까지 총 9352억원을 투입해 철강·화학·시멘트 분야 탄소중립 핵심기술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탄소중립연구본부 기후변화정책연구팀장은 “단기적으로는 우리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고 검·인증하고 제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대기업의 경우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관련 경험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없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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