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 '약품'으로 쓴다면 먼저 볼 건 원산지가 아닌 이유

기자 2022. 1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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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슈룹>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왕실 후계 선정을 위한 ‘궁중 엄마들’의 교육열을 그린 조선판 스카이캐슬쯤 되는 줄거리가 펼쳐진다. 김혜숙, 김혜수 등 쟁쟁한 여배우들의 열연과 회차별로 이어지는 긴장감으로 인해 이어보기 버튼을 계속 누르게 됐다.

특히 초반에 세자가 죽게 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한의학과 관련한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용인즉슨 세자가 걸린 ‘혈허궐’이라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궁중의 약재가 아닌 외부 약재를 쓰게 되고, 이것이 문제가 돼 주인공들이 고초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 내용을 떠나 주인공들은 현대에 온다고 해도 똑같은 고초를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임금의 어명이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규제에 의해서 문제가 됐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궁중 약재라는 것이 철저하게 관리된 약재를 의미한다면, 외부 약재라는 것은 관리되지 않은 민간 약재를 의미한다. 한약으로 쓰이는 약재들은 대부분 생물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합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화학약품과 달리 생산과 유통·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다른 약재가 유통되는 경우도 있고, 유통 과정에서 값싼 약재가 혼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동일한 약재라 하더라도 그 성분의 함량이 미달돼 약으로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를 쉽게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는 올바른 한약재의 사용을 위한 한약재 감별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한약재를 감별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먼저 직접 보는 관능 검사법, 그리고 성분 분석을 통하는 이화학적 검사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전자 분석법이 있다. 성분과 유전자를 통해 분석하는 방법이 가장 정확할 수 있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로 전문가의 감별을 우선 활용하게 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스마트폰 촬영만으로도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감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한약재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한약재는 많은 경우 식품으로도, 약품으로도 쓰인다. 식품으로 쓸 경우에는 원산지와 안전성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농약과 중금속 등 유독한 물질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식품은 원산지 이력 추적 등을 통해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약품으로 쓸 때에는 원산지보다는 안전성과 효능이 중요하다. 의료용 한약재의 경우에는 국가에서 약전이라는 공식적인 문서를 통한 기준을 정해놓고, 이에 부합한 약재들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07년부터 모든 한방의료기관에서는 의료용 한약재만 사용할 수 있으나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모양새이다. 그리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약의 식품적인 성격으로 인해 원산지를 중요시하는 문화도 여전히 남아 있다.

민간의 고수가, 알려지지 않은 약재와 비방을 통해, 불치병을 낫게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은 드라마 속에서 원하는 전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슈룹>에선 반대 상황이 나타났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검증되지 않은 약재를 사용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생각해보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약은 원산지보다는 검증된 효능과 안전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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