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건아의 노쇠화? 오로지 본인만의 탓일까
전주 KCC 입장에서 라건아(33‧200.5cm)는 ‘양날의 검’이다. 한창때 기량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상대 외국인선수 대비 최상급 2옵션, 무난한 1옵션 역할은 가능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라건아가 있음으로해서 1, 2옵션이 한꺼번에 실패할 공산은 없어지게 된다. 실제로 지지난 시즌 메인 외국인선수 역할을 하던 타일러 데이비스가 시즌 중간에 떠났음에도 그 빈자리까지 나름 메워주었으며 그러한 모습은 올시즌까지도 계속되는 모습이다.
반면 귀화선수 신분으로 다년 계약이 되어있는지라 싫든좋든 계속해서 함께 해야되는 점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KBL리그에서 외국인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아무리 토종 선수진이 우수해도 외국인선수 전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다.
때문에 매년 그들의 공헌도를 검토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데 KCC는 그럴 기회 자체가 묶여있는 상태다. 새로운 외국인선수 둘로 새판을 짜고싶어도 라건아 계약기간 동안에는 불가능하다. 싫든좋든 라건아와 함께 가야 하는데 그로인한 단점은 장점못지않게 KCC 전력구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라건아보다 더 나은 1옵션 외국인선수를 선발하면 그러한 걱정은 상당 부분 해소된다. 다소 민감한 성격의 라건아 달래기 등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부분이다. 아쉽게도 KCC는 타일러 데이비스와의 반시즌 정도의 동행을 제외하고는 라건아 이상의 선수를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라건아가 계속해서 1옵션 역할을 수행하고있는 상황이며 그로인해 외국인선수 전력에서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선수들과 비교해 라건아는 신체조건, 운동능력 등에서 딱히 앞서는 선수는 아니다. 기술적인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체력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뛰고 또 뛰는 에너지 레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리그 적응이 필요한 외국인선수들과 달리 풍부한 국내리그 경험을 바탕으로 토종 선수들과 손발이 잘 맞는 편이며 상대팀 주요 선수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라건아가 다른 외국인선수들과 가장 크게 다른 요소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는 것처럼 라건아도 이제는 한창 때에 비해 활동량, 신체능력 등에서 다소 하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함지훈처럼 엄청난 BQ로 농구하는 스타일이 아닌 이상 팀 공헌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그가 뛰고있는 KCC 소속 전창진 감독이나 동료들이 누구보다도 이를 더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들어 전감독은 라건아에 대한 아쉬움을 종종 토로하고 있다. 특히 17일 삼성전에서 25분동안 5득점, 5리바운드에 그치자 "라건아의 페인트존 지배력이 예전같지않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마커스 데릭슨의 이탈로 이매뉴얼 테리가 많은 시간을 소화했던 삼성을 상대로 골밑공략으로 승부를 보고싶었으나 그 부분이 안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큰 듯 보였다.
물론 이날 라건아의 경기력이 다운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라건아는 평균 15.77득점, 1.36어시스트, 12.27리바운드(전체 2위)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평균 출전시간은 28분 29초로 결코 짧지않다.
무엇보다 라건아는 시즌 내내 골밑사수에 대한 많은 책임감을 안고 경기를 뛰고 있다. 가뜩이나 장신 자원이 적은 KCC에서 함께 뛰는 외국인선수 마저 스윙맨 스타일의 론데 홀리스 제퍼슨(27‧198cm)이다. 이승현 정도를 제외하고는 포스트에서 힘을 보태주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다. 더욱이 신장이 작으면서 에너지 레벨까지 높지 않은 이른바 ‘꼬꼬마 가드진’으로 인해 수비시 해야될 몫이 크다. 가드진의 수비가 약해 앞선에서부터 뻥뻥 뚫리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승리한 경기에서는 평균치를 상회하는 기록을 올리며 팀을 이끌었다. 특히 삼성전 이전까지 3경기에서 평균 30분을 훌쩍넘는 출전시간을 가져가며 강행군을 내달렸는데 그로인해 ‘라건아의 체력을 조절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안팎에서 쏟아지는 분위기다.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인지라 적절한 휴식이 취해지지않으면 꾸준한 활약이 쉽지않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라건아는 그간 빡빡한 리그 일정과 국제경기를 오가며 쉼없이 경기를 소화했던지라 아무리 철인이라고해도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골밑 경쟁력이 떨어지는 팀 전력상 라건아가 코트에 없으면 그렇지않아도 낮은 높이가 확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오로지 라건아에게만 의지해서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라건아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KCC구단과 전감독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즌전부터 거기에 맞는 로스터 구성, 다양한 활용방안과 라건아가 없을 때의 플랜 A, B 등을 준비했어야 되는 것이 맞다. 데이비스와의 갈등으로 인해 제퍼슨이 오게된 과정까지는 어쩔 수 없다해도 적지않은 빅맨자원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력에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가드자원만 지나치게 깔아놓지말고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빅맨진들에게도 기회를 줘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골밑의 중심은 라건아인지라 잠깐이라도 나와서 몸싸움만 해준다고해도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런 가운데 경험치도 쌓일 수 있다.
17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2021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에 뽑힌 조우성(10득점, 10리바운드)이 맹활약을 펼치자 KCC팬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조우성이 이날의 활약을 앞으로도 이어나갈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경험이 쌓이고 활약하는 선수가 늘어갈수록 그것이 곧 선수층이 되기 때문이다. 선수들간 동기부여와 경쟁촉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어떤 선수는 스타일이 너무 안맞아서 안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유형마저 자신의 농구에 녹여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용병술이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다. KCC가 시즌 후반에라도 뒤집기를 노린다면 당장의 1승을 위해 일부 주전을 몰아넣는 스타일은 바람직하지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골밑이 약하기에 라건아와 이승현 등의 출장시간 관리를 더욱 꼼꼼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