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하 KAI 실장 “전투기 수출 숨은 공신은 시뮬레이터”
“아무리 좋은 전투기라도 조종사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시뮬레이터는 바로 그 조종 역량을 기르는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김영하 KAI 훈련체계사업실장
경상남도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우주센터에서 만난 김영하(54) KAI 훈련체계사업실장은 “결국 조종사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시뮬레이터도 조종사의 안전한 비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뮬레이터 개발만 20년 넘게 해온 베테랑이다. 지난 1994년 삼성항공에 입사해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시작했고, 2001년부터 KAI 훈련체계팀에 소속돼 T-50 고등훈련기를 시작으로 항공기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T-50 계열 훈련·전투기, KF-16 전투기, KT-1 기본훈련기 등 고정익 기종뿐만 아니라 마린온, 소형무장헬기(LAH) 등 회전익 기종의 시뮬레이터도 개발·납품했다.
그는 “KAI의 시뮬레이터는 한국 전투기 조종사의 산실과도 같다”고 했다. 공군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 학생 조종사들은 KAI가 만든 KT-100 연습기, KT-1 훈련기, T-50 고등훈련기를 두루 거치며 조종 역량을 쌓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비행기를 이용한 비행 훈련이 진행되지만, 미숙한 학생 조종사들에겐 시뮬레이터를 통한 사전 연습이 충분히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뮬레이터는 결국 ‘훈련’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갑자기 엔진에 이상이 생기거나, 기후가 나빠지는 비상 상황은 실제 비행기로는 연습이 불가능하다”며 “KAI가 만든 훈련기 시뮬레이터는 모든 비상 상황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고 있어 조종사의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개발은 크게 3개 부문(기체 제작, 후속 지원 체계, 훈련 체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시뮬레이터와 같은 훈련 체계 개발 부문 규모는 전체의 5% 정도로 가장 작지만, 시뮬레이터 제작 절차는 실제 항공기 제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초 설계, 상세 설계, 제작 및 훈련, 시험 평가 등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거치면서 가상의 항공기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해낸다는 것이다.
그는 “시뮬레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선 항공기의 각 계통에 대한 모든 기술 자료를 모아야 한다”면서 “실제 항공기는 각 계통을 만드는 엔지니어들이 파트를 나눠서 일한다면, 우리는 모든 계통을 이해하고 구현해야 해 업무 집적도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 부문의 크기는 작아도, 실질적 홍보 효과 등은 다른 부문보다 훨씬 크다”고 덧붙였다.
KAI의 시뮬레이터는 완제기 수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해외 바이어(구매자)와 군 관계자들이 찾아와 직접 비행을 해보기는 어려워도, 시뮬레이터를 탑승해 보며 기체의 성능을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기를 수출할 때 훈련용 시뮬레이터도 함께 수출하기 때문에, 훈련 체계의 완성도 역시 수출 협상에서 중요하다. 사실상 완제기 수출의 숨은 공신인 셈이다.
그는 “2017년에 태국에 수출할 때 고객들이 ‘이 시뮬레이터 때문에라도 항공기를 더 사야겠다’고 말했다. 이번 폴란드 수출 때도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KAI 시뮬레이터의 강점으로 ‘완제기 제작 능력’과 ‘노하우’를 꼽았다. 그는 “시뮬레이터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항공기 기술자료다. 기술자료는 결국 제작사가 가장 잘 활용할 수밖에 없다. 보잉, 록히드마틴, 에어버스 등 해외 대형 업체들도 모두 자사 항공기 시뮬레이터를 개발하는 조직이 구축돼 있다.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KAI는 20년 넘게 시뮬레이터를 개발해오고 있기 때문에 인력, 체계, 시설 등 인프라도 국내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KAI는 KT-1, T-50 계열, KUH 헬기 등 여러 기종을 거쳐오며 기술적 노하우를 쌓아 왔다.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는 보유한 훈련체계 개발 기술로 항공 시뮬레이터뿐만 아니라 해상, 육상 무기 시뮬레이터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한국 해군과 협력해 지난 2020년 장보고-3 잠수함 시뮬레이터를 개발했고, 현재 국내 방산업체와도 협력해 전차 등 지상무기체계에 대한 시뮬레이터도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개발 능력은 이미 갖춘 상태로, 무기 체계 기술 자료만 확보하면 해상 또는 지상 방산체계 시뮬레이터도 다 만들 수 있다. 지금은 해군의 고속상륙정 시뮬레이터를 개발하고 있고, 육상 분야도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산 지상무기도 올해 대규모 수출에 성공하는 등 그 우수성은 이미 확인됐다”면서 “지상무기에도 고도화된 시뮬레이션 훈련체계가 갖춰지면 향후 추가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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