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여의도는 '후원금 전쟁'...열심히 모으는 것만큼 잘 쓰고 제대로 공개해야

강윤주 2022. 12.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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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사건 이후 도입된 오세훈법
고비용 정치 구조 탈피했지만 소수정당, 정치신인 '돈줄' 족쇄
소액 다수 기부 틀 유지하되, 정치자금 공개 시스템 강화해야
16일 정청래(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정청래TV'에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이 출연해 지지자들에게 '한 푼 줍쇼'라고 외치며 후원금을 호소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애꿀팁'을 알려주며 후원금 모금에 나서 화제를 모았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비법을 전수해드립니다."

지난달 27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연애꿀팁'을 알려주겠다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통화할 때 중간에 끊기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을 이용하며 순정을 어필하라는 식이다. 꿀팁이라고 하기엔 다소 김빠지는 조언을 남녀 간의 상황극까지 곁들여 정성스레 올린 작성자의 이름은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소속 그 김남국 의원(경기 안산시 단원구 을)이다.

의정활동에 힘을 쏟기에도 바쁜 시기, 김 의원이 청년들의 연애코치까지 자처하고 나선 진짜 사연은 글 말미에 담겨 있다. "이 글을 보고 웃고 계시거나, 연애 꿀팁이라 생각하는 분들은 후원 꼭 부탁드립니다." 텅텅 비어 있는 청년 정치인의 후원금 통장을 채워달라는 간절한 호소. 잊지 않고 적어 놓은 후원회 계좌번호에선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다가오면, 여의도는 한없이 초조해진다. 밀린 법안, 예산안 처리 등 민생과 나라 살림 챙기는 것만큼이나 중차대한 '월동준비'가 남아 있어서다. 300명 의원들은 내년에 일용할 양식을 곳간에 꽉꽉 채워 넣고자 연말마다 사활을 건다. 정치 후원금, 짠내 나는 '쩐(錢)의 전쟁' 속을 들여다봤다.


홍보형, 구걸형 세일즈 방식도 다양...진영 논리 편승 '팬덤 후원금'도

국회의원들이 매년 모을 수 있는 후원금엔 법정 한도가 정해져 있다. 평년에는 1억5,000만 원. 대선과 지방선거, 국회의원 총선 등 공직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늘어난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던 올해는 평년보다 두 배 더 모을 수 있다. 목표치를 채우는 건 전적으로 의원들의 몫. 시민들의 '픽(Pick)'을 받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동원된다.

기본은 ①홍보형이다. 국정감사 우수 의원 선정 등 의정 활동 성과를 세일즈하며 정공법으로 호소하는 식이다. 간절함이 도를 넘어서면 ②구걸형으로도 발전한다. "통장이 텅 비어 있으니 마음마저 쓸쓸하다. 한 푼 줍쇼"(정청래 민주당 의원), "군자금이 부족해 보좌관들과 매일 김밥만 먹고 있다"(김용민 의원) 등 노골적인 읍소로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으려 애쓴다.

극단적 진영 논리에 편승한 ③팬덤 맞춤형도 있다. 강성 지지층 구미에 맞는 의정활동으로 후원금을 획득하는 방식인데,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김 의원은 이른바 한동훈 장관의 서울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로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후원금 목표치(비례대표의 경우 1억5,000만 원)를 일찌감치 채웠다. 제보 속 핵심 등장 인물이 거짓말을 실토하며 관련 의혹은 '가짜뉴스'로 판명 나고 있지만, 김 의원만큼은 실속을 챙긴 셈이다.


'차떼기 사건' 이후 개인 중심 후원금 전환했지만, 갈 길 먼 '소액기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겹친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쇄신을 다짐하며, 당사 건물을 매각하고 천막 당사를 택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액의 금전 기부를 통해 평범한 유권자가 정치적 지지를 표명하는 현행 방식의 후원금 제도는 2004년 개정된 일명 오세훈법(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이후 정착됐다. 그전까지 한국 정치판은 여의도에 줄을 대기 위한 기업들의 뭉칫돈으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곧 당선을 뜻하는 금권선거 시절, '검은돈'의 결탁은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토양이 됐다.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은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던 불법 정치자금의 민낯을 드러낸 계기였다.

고비용 정치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 확보를 위한 개혁의 전제조건은 소액기부였다. 고액기부를 제한하기 위해 중앙당 후원회를 폐지시키고, 기업·기관·단체 후원도 원천 금지됐다. 개인이라고 무한정 많이 낼 수도 없다. 연간 후원금 한도는 2,000만 원. 대통령(예비)후보는 1인당 1,000만 원, 정당 및 정치인 후원 땐 1인당 500만 원이 최대치다. 아무리 맘에 드는 정치인이 있어도, 2,000만 원을 한 사람에게 몰아줄 수 없다.

소액후원 활성화를 위해 세액공제도 시행됐다. 10만 원을 후원하면, 연말정산 때 1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각 의원실에서 '10만 원만'을 외치며 후원을 독려하는 이유다. 10만 원 초과 금액부터는 15%, 3,000만 원 초과 시엔 25%까지 세액공제된다.


개인 중심 후원금 총액은 들쭉날쭉, 정당국고보조금은 증가 추세

소액 다수 정치 기부가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엔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후원금 모금 총액만 봐도 들쭉날쭉이다. 선관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오세훈법 도입 이후 국회의원 모금총액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8년 634억 원이었다. 가장 낮았던 때는 310억 원(2011년). 19대 대선이 있던 2017년이 540억 원으로 그나마 회복한 수치다.

정치자금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도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작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정치자금기부금에 대해 28만 명이 250억 원의 세액공제를 받았다. 2012년 31만 명이 255억 원의 세액공제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숫자도 액수도 오히려 줄었다.

반면 후원금과 더불어 한국 정치자금원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정당국고보조금의 경우 비선거연도(경상보조금만 지급) 기준 2003년 265억 원에서, 2013년 379억 원, 2019년 432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04년 정치자금 개혁 당시의 전망과 달리 정치자금 조달이 정당 중심에서 정치인 개인 중심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국회입법조사처, 정치후원금 기부 현황과 활성화 방안 보고서)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힘 있는 곳에만 돈 몰리는 구조, 정치신인 가로막는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역 국회의원, 거대정당에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현행 제도에서 정치자금은 힘 있는 곳에만 돈이 몰리는 구조다. 출발선부터 다르다. 선관위가 정당에 배분하는 국고보조금 절반은 원내 교섭단체에 우선 배분되고, 원외 정치인은 선거 120일 이전 예비후보 자격을 가질 때에만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소수정당, 원외, 정치 신인일수록 진입장벽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세훈법 도입 이후 처음 실시된 2008년 총선 당시 대다수의 지역선거구에서 현직 국회의원의 후원금 모금 액수가 원외 도전자 후보보다 평균적으로 2배 이상 높았다는 결과(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후원회 모금액에 대한 경험적 분석)는 불평등한 진입장벽의 단면을 보여준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비극이 말해주듯 전국구 인지도의 정치인도 원내 기득권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순간, 정치자금 족쇄에서 벗어나긴 힘든 현실이다. 이익단체나 기업들이 입법로비 목적으로 직원들 개인 명의로 액수를 나눠 특정 의원에게 몰아주는 '쪼개기 후원금' 등 편법 정치자금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현실론'과 '원칙론' 사이... 대안은 투명성 강화 "국민 감시 기능 높여야"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문가들 역시 현행 제도가 '미완'이라는 데 동의한다. 해법은 엇갈린다. 음성적 불법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입구'를 풀어주자는 '현실론'이 매번 고개를 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원칙론'이 더 커 보인다. 규제를 다 풀어줬다가 경제적 강자의 목소리만 투영돼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절충적 대안은 투명성 강화로 모아진다. 정치자금에 대한 국민 감시 기능을 높여 신뢰를 회복한다면 정치 기부도 더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다. 얼마를 어디에 썼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선 정치자금 공개 제도부터 손대야 한다.

먼저 한국의 정치자금 공개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깜깜이'에 가깝다. 내용도 횟수도 방식도 열려 있지 못하다. 일단 공개 횟수부터 적다. 평시의 경우 정당과 국회의원은 매년 1회, 선거 때는 선거가 끝난 뒤 30일 안에 수입 지출 내역을 보고하고 선관위는 이를 7일 이내 공개토록 규정한 게 전부다. 공개 기간도 3개월에 그친다. 내용도 제한적이다. 선거자금 외 일반비용은 임의규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어 전체적인 자금 흐름을 살피기도 어렵다.

공개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 가능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고 굳이 궁금하다면 선관위 사무소를 방문하거나, 서면 열람의 경우 신청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또 '공개된 정치자금 기부내역을 인터넷에 게시하여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선 안 된다'(정치자금법 제42조 5항)고 정보 활용 자체를 막아놨으니 요식행위에 그치는 셈이다.


美 '자주, 빨리, 많이' 전자공개, 상시열람권 등 접근성 보장해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건 미국의 정치자금 공개 제도다. 미국은 자금 모금 방식과 지출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철저한 정보 공개로 견제 장치를 두고 있다.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최대한 존중해주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먼저 회계보고 시스템이 상시적이다. 1년에 분기별 4번이 의무고, 선거 전후로도 촘촘히 기간을 정해 보고한다. 연방선거위원회(FEC)는 신고된 서류를 48시간 이내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 기부자의 기본 인적사항에 직업과 고용주를 함께 적게한 것도 포인트다. 시민들은 FEC 홈페이지에서 후보자의 후원금 현황과 지출 영수증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키워드 검색 한 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변화를 모색하긴 했다. 시민단체와 선관위 등은 정치자금 공개 범위 확대 및 인터넷 상시 공개를 주장하며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해 왔으나, 정치권은 좀처럼 응답하지 않고 있다. 2020년 한국의회발전연구회가 발표한 '한국정치자금 공개제도의 개선방안 연구: 한국과 미국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연구논문에선 △공개 자료의 전자화 △상시 열람권 보장 △모든 정치자금으로 공개 대상을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2015년 헌재 판결로) 정당 후원회 제도가 부활하고 정치자금 규모가 커지면서 부패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정치자금 확대 공개는 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적어도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에 대해선 실시간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 정당 및 국회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자금에 대한 투명성과 개방성 확대가 우선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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