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경지는 온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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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텬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 무엇? 시심마(是甚麽)? 무엇이 이 물건으로 움직이고 멈추는가? 무엇이 이 물건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가? 오직 묻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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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1. 한밤중 몇 시쯤 되었을까? 잠 깨어 랜턴 불 밝히고 ‘선가귀감’을 펼친다. “경계를 보아도 마음 일지 않으면 불생이라 이르고(見境心不起名不生) 불생을 무념이라 이르고(不生名無念) 무념을 해탈이라 이른다.(無念名解脫).” 누구는 맘대로 고쳐 읽는다. “사물을 보아도 마음 일지 않으면(見物不生心) 죽음으로 산다 이르고(名生以死) 죽음으로 살면 해탈이라 이른다(生以死名解脫).”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 개울에서 머리 감고 물 끓여 차 우려 마시고 초점 없는 눈으로 앞산을 바라본다. 아아, 숲 그늘 사이로 밝은 햇살 스며드니 숨어있던 거미줄이 ‘나 여기 있다’고 출렁거리는구나. 저리 출렁이며 흐르는 것이 거미줄인가? 햇살인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저 혼자 존재하는 아무것도 없다는 오롯한 진실 하나!
#2. 이른 새벽. 잠결에 한 말씀 듣고 깨어나 ‘선가귀감’을 읽는다. “부처 가르침을 부처 모시듯 소중히 여기면(重戒如佛) 부처가 늘 거기 계시니(佛常在焉) 초계(草繫)와 아주(鵝珠)를 선도(先導) 삼아라.” ‘초계’는 강도 만난 사람이 풀로 온몸이 묶여 있는데 풀이 상할까 염려하여 그대로 있더니 사냥 나온 임금이 저를 보고 감동하여 불교에 귀의했다는 옛이야기. ‘아주’는 거위가 보석 삼키는 것을 본 비구가 도둑 누명을 쓰고 보석 주인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거위가 삼켰다는 말을 하지 않다가 거위 똥에서 보석이 나오매 누명도 벗고 거위도 살렸다는 옛이야기. 옳다, 스승의 가르침을 스승처럼 받들지 않고서 어찌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한님 어머니, 오직 당신의 뜻이 우리에게서 옹글게 이루어지기만을 소원할 따름입니다. 아멘.
#3. 소리가 누구의 글을 번역했는데 잘 됐는지 봐달란다. 이런 내용이다.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하이든 소나타를 연주한다. 그가 피아노를 애무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 곡은 삼라만상이 하나라고 말하는구나.” 그가 같은 무대에서 모차르트 트리오를 연주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 곡은 삼라만상이 하나라고 말하는구나.” 다른 무대에서 쇼팽 판타지를 연주하며 생각한다. “이 곡은 삼라만상이 하나라고 말하는구나.” 같은 무대에서 베토벤 사중주를 연주하며 생각한다. “이 곡은 삼라만상이 하나라고 말하는구나.” 누구의 무슨 곡을 어디에서 연주하든 그의 생각이 “이 곡은 삼라만상이 하나라고 말하는구나”로 귀결되는 것을 보며, 이건 생시가 아니라 꿈이군, 하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잠시 생각한다. 작곡가들의 음악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알고 보면 우리 모두 하나”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 열쇠는 그것들의 소리 없는 이구동성을 알아듣는 귀에 있다.
#4. 한밤중에 랜턴 불빛으로 ‘선가귀감’을 읽는다. “빛과 어둠은 서로 대적하지 않는다(明暗不相敵).” 그렇다, 어미인 어둠은 자식인 빛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둘은 서로 싸울 수 없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는 까닭은 빛보다 약해서가 아니다. 어둠은 없고 빛은 있다. 없는 것이 있는 것과 무슨 수로 싸워서 이기든 지든 하겠는가? 혹여 어미와 자식이 서로 다툰다면 어미가 어미 아닌 거다.
#5. 오늘도 한밤중에 읽는 선가귀감. “풀꽃 향기로운 길을 가지 않으면 꽃 지는 마을에 닿기 어려우리(不行芳草路難至落花村).” 풀꽃 향기로운 길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거쳐서 지나가는 곳이다. 이 세상이 머무는 데가 아니라 통과하여 지나가는 곳임을 잊지 말자. 한순간도 자전과 공전을 멈추지 않는 지구별에서 누가 무슨 수로 한 자리에 머물 것인가? 꽃이 지는 마을은 열매가 맺히는 마을이다. 열매란 노력해서 성취하는 결과가 아니다. 생긴 대로 살다 보면 그 삶의 내용에 따라서 맺어지는 게 열매다.
#6. 산비탈 바위 아래 벌통 몇 개 있고 여기는 벌을 치는 데라 벌에 쏘일 수 있으니 “출입하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보인다. 주제넘다. 벌에 쏘이거나 말거나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것은 이쪽 맘이다. 혹 거기가 ‘사유지’라면 여기는 사유지니 들어오지 말라고 하든지 아니면 저기는 사유지니 들어가지 말자고 하는 게 옳다. 거기가 국유림이면 저런 팻말을 세울 근거 자체가 없다. 주제넘을 뿐 아니라 웃긴다. 한님 세상에 사유(私有)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말이다. 한낱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가 무엇을 제 것이라 주장한단 말인가? 한님이 아이에게 보리떡 다섯개와 생선 두마리를 주신 것은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게 아니었다. 만물이 공유(共有)다. “모두가 속해있다(Everything Belongs)”는 리처드 로어의 책 제목이지만 그가 만든 말은 아니다. 모든 존재물이 하나인 존재의 부속품이다. 자동차 부속품이 자동차를 떠나서는 존재 불가능이듯, 전체에서 떨어진 부속품은 있을 수 없는 것. 떨어져 나온 부속품은 그냥 고철(古鐵)이다. 사유(私有)란 본디 사(私)로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치명적 착각 바이러스다. 말장난이긴 하지만, 사유(私有)는 사유(死由)다.
#7. 백석(白石)의 시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하는 것은 작은 기쁨이고 한숨이다.
‘이리하여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텬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 무엇? 시심마(是甚麽)? 무엇이 이 물건으로 움직이고 멈추는가? 무엇이 이 물건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가? 오직 묻기만 하라. 답을 찾지 마라. 어디에도 없는 물건이다. “여기 한 물건이 있거니와 본디부터 환하고 맑아서 나지도 죽지도 아니하며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有一物於此從本以來昭昭靈靈不曾生不曾滅名不得狀不得―禪家龜鑑).”
#8. “마음은 거울의 몸이요 성품은 거울의 빛이다. 성품은 스스로 맑고 깨끗하다(心如鏡之體, 性如鏡之光, 性自淸淨. -禪家龜鑑).” 거울이 비추는 것 아니다. 빛이 거울로 비추는 거다. 네 마음이 생각하는 것 아니다. 내가 네 마음으로 생각하는 거다. 내가 누구냐고? 묻지 마라. 아니, 물어라, 끊임없이 물어라, 묻기만 해라.
#9. 어제오늘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는다. “…싯다르타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제 온전히 귀 기울여 듣는 자가 되어, 오로지 듣는 데 몰두하였으며, 마음을 말끔 비운 채, 모두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마침내 귀 기울여 듣는 법을 끝까지 다 배웠음을 느꼈다.” 이 문장 하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던가?
#10.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다시 읽는다. 이 비극의 제목을 ‘오셀로’보다 ‘이야고’로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그가 중요 등장인물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실제 주인공이니까. 그림자가 짙다는 건 그만큼 빛이 밝다는 얘기다. 밤낮없이 해를 돌며 빛과 어둠을 겪어야 하는 지구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네가 나무를 보는 것 아니다. 나무가 들어오게 마음의 창을 열어두는 것이다. 네가 누구를 또는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다. 그가 또는 그것이 들어오게 두는 것이다. 네가 누구를 또는 무엇을 떠나보내는 것 아니다. 그가 또는 그것이 떠나가게 두는 것이다. 네가 네 일을 하는 것 아니다. 한님이 당신 일을 너로 이루시도록 가만있는 것이다. 오냐, 이제부터 이렇게 아무 일 하지 않으면서 온갖 일을 하는 거다.
#11. 새벽에 돌연 한마디 질문이 다가온다. 나중에 속더라도 지금 사람을 믿겠느냐? 아니면 나중에 속지 않으려고 지금 사람을 믿지 않겠느냐? 답한다. ‘나중에 속더라도 지금 믿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변장한 당신이라는 선배들의 귀띔을 못 들은 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다, 하지만 그 생각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마라. 예, 선생님.
#12.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주어도 받지 않으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주는 이와 받는 이가 하나라는 전제 아래 비로소 성립되는 말이다. 줌과 받음이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아침 식탁에서 효선이 말한다.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내 자식이라는 어머니 말씀을 새벽 명상 시간에 들었다고. 속으로 손뼉 쳐준다. 선하고 아름다운 말이다. 말이 씨라는 말은 있지만 말이 열매라는 말은 없다. 뭐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니까 그게 없는 거다. 뭐가 없어서 그게 없다고 말하는 것 아니다. 이 순서를 뒤집어서 온갖 불만(不滿)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다.
글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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